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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에 가면 딴 사람으로 변할까? ‘교포화장’의 진실
2009-08-11, 10:14:15 Taiji
추천수 : 306조회수 : 7256
2007년 말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International Figure Skating'이라는 유명 피겨 전문지에 표지모델로 출연했을 때 얘기다.

표지 사진을 본 국내 팬들은 "이 사람이 김연아 맞느냐"며 깜짝 놀랐다. 한참 선배인 미셀 콴을 따라한 듯한 진한 색조화장과 부담스러운 아이라인이 어색했던 탓이다. 그러나 미국 팬들은 이런 모습에 "Yu-Na Kim 너무 예쁘다"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후문이다. 풋풋한 김연아의 밝고 경쾌한 화장에 익숙해 있던 한국 팬들은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교포화장'이냐"며 한바탕 찬반 논쟁을 벌였다.


짙은 볼터치와 강렬한 눈화장, 촌스러…?

최근 미국에서 활약 중인 원더걸스 5인방(선예 소희 선미 예은 유빈)의 화장법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드림걸스'를 연상케 하는 모타운풍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한국에서 활동할 때의 주요 컨셉이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피부톤과 진한 색조화장이 도마에 올랐다. 마치 1980년대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가수처럼 촌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역시 김연아 사례와 유사한 '교포화장' 논란이다.

한국 팬들은 교포 화장법에 대해 "10대 어린 소녀를 향한 '테러'"라고 흥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 원더걸스를 응원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교포 화장 논란은 미스코리아의 국제무대 진출 때도 간혹 불거졌다. 한국에서 단아한 미를 선보였던 2006년 미스코리아 이하늬와 2007년 미스코리아 이지선 역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을 때는 까무잡잡한 메이크업으로 한국 팬들의 비난을 샀다. 저런 비()한국적 이미지로 입상이 가당키야 하느냐는 비판이었다.

한국에서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는 교포 화장 논란의 함의는 무엇일까?

한국의 와 미국의 는 다르다?

우선 어원이 불분명한 이 '교포 화장'이란 단어는 90년대 알음알음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패션계 인사들은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포란 해외교포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이민 세대들을 지칭한다.

교포 화장은 눈, 코, 입을 시원시원하게 표현하고 특히 광대뼈를 강조한다. 까무잡잡한 피부톤과 스모키 아이에 입술은 도톰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방식이다. 눈꼬리가 만화 주인공처럼 치켜 올라가 강한 인상을 전하고 볼륨감이 극대화된 헤어스타일도 교포 화장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ABC방송에 등장했던 중국계 코니정이나 CNN에 등장했던 한국계 메이리 혹은 앨리나 조의 얼굴을 떠올리면 된다.

'교포 화장' 유행의 원인에 대해서는 우선 햇볕이 강하고 개방적인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문화 환경에 적응한 자연스런 결과라는 해석이 있다.

미국 휴스턴에 사는 주부 K씨(39)는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유행했던 10년 전 미국에 와보니 한국 여성들의 눈두덩이가 대부분 거무튀튀해 놀랐다"면서 "하지만 미국 거주 기간이 긴 교포들일수록 그런 짙은 화장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 전했다.

상당수 미국 교민들은 "아시아 여성의 얼굴이 입체적이지 않아 의도적으로 짙은 화장을 통해 광대뼈를 돌출되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또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좋아하기 때문에 피부색 표현을 진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LA에서 발행되는 한국계 일간지에 근무하는 정 모 기자는 "처음에는 한국의 1980년대로 되돌아간듯한 진한 화장이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문화 풍토 때문에 이제는 (교포 화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현지의 문화 환경에 적응한 결과인 화장법을 한국의 유행에 맞지 않는다고 '촌스럽다'고 폄하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커다란 눈, 광대뼈 부각…서구인이 바라보는 아시아 여자

이와는 달리 교포 화장에는 미국 백인들이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07년 김연아의 '교포 화장' 논란을 보도했던 엘르코리아는 당시 "교포스타일의 메이크업은 미국 백인들이 좋아하는 동양 여자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뮬란'이나 '포카혼타스'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아시아 여성들이 비교적 싫어하는 찢어진 눈과 툭 튀어난 광대뼈가 오히려 미국에서는 '전형적인 아시아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좀더 강해보이기 위해 강렬한 색조를 택했다"거나 "빠르게 유행이 바뀌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는 여전히 미국적 트렌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마지막으로 '교포 화장'이란 표현에는 한국과 미국 교민 사회간의 달라진 권력 관계를 함축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화평론가 최영일 씨는 "옛날에 미제()와 미국은 첨단 문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젊은 세대들의 달라진 인식과 자신감이 '교포 화장'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나왔다"고 해석했다.

미국 교포에 대한 선망 의식이 옅어지면서 교포 화장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최 씨는 "교포 화장이라는 표현에는 조롱하는 듯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게 문제이다. 때문에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원더걸스에 환호를 보내는 팬들은 거의 대부분 아시아계 청소년들이다. 원더걸스의 교포 화장이 포카 혼타스를 전형적인 아시아 미인으로 여기는 백인 청소년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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