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 유화로 유명한 천이페이(陈逸飞)는 1946년 저장(浙江)성 전하이(镇海)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5년 현재 상해 대학교 미술학부인 상해 미술 전문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후에도 학교에서 유화 작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 1980년에 미국으로 넘어가 5년 뒤인 1984년에 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에 천이페이는 뉴욕에서 유화를 그리는 작업을 계속 하면서, 뉴욕, 워싱턴, 도쿄에서 개인전을 진행 하였다. 그 후, 그의 여러 작품들은 홍콩과 국내의 유명한 작품 경매에 출품되었다.
1985년, 미국 <뉴욕타임즈>는 그를 ‘현실주의와 낭만주의의 결합체’로, 미국의 <예술신문>잡지에서는 그를 ‘낭만적인 현실주의자’로 소개한 적이 있을 만큼 천이페이는 낭만주의와 현실주의를 모두 추구했던 화가이다. 그의 유화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요함과 평화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그려지는 대상과 기법을 막론하고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서양의 기교를 이용하되, 작품에는 중국의 정신을 담는 것’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현실주의가 투영되어 중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베네치아와 수조우(苏州)의 풍경과 음악과 관련한 인물, 중국 인민군을 담은 작품들이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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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송(黄河颂)> |
그는 작품활동의 범위를 단순히 그림 영역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1992년에 상하이로 돌아온 그는 Layefe라는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자신의 작품으로 옷을 디자인 했다. 또, 독립 영화 형식의 예술 영화 <바다의 오래된 꿈 – 천이페이의 개인 수상록>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30년대의 상해를 반영한 <인약황혼>, 예술 영화 <상하이탈출>, 현장 기록 드라마 <상하이의 방주> 등 영상물 제작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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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풍(山地风)> |
천이페이는 2005년 59세로 상하이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작품만이 세상에 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년에 열린 중국 최대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인 <황하송(黄河颂)>이 약 2천만 위안에 출품되었지만 추정가를 훨씬 넘는 약 4천만 위안에 낙찰되기도 하였다. 또 올 해 5월 24일에 열린 중국의 춘계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인 <산지풍(山地风)>은 7천 백만 위안으로 팔려, 중국 내에 유화 작품 교역가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한화로 몇 십억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작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희망 프로젝트’라는 곳에 꾸준히 기부를 하였고, ‘맹광 예술교육 기금회’를 건립하여, 꾸준히 예술분야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개인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 했었다. 또 그의 이름을 건 이페이(逸飞)기관을 창설하여 현재, 이 기관은 의류, 광고, 잡지, 모델, 환경예술 등 다방면의 기능을 가진 시각산업 종합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 복단대 학생기자 정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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