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찬(朱屺瞻)은 중국과 서양의 화법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한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중 한 명이다. 1982년 장쑤(江苏)성에서 태어난 그는 8살 때부터 중국 고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후 그는 1917년 일본 유학을 통해 유화를 배웠으며 유학 이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 고전화, 산수화, 화초, 난, 죽 등을 주로 그렸으며 그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의 소재는 매화꽃이었다.
그의 그림은 중국 고전화와 서양 미술의 아름다움이 잘 조화되어 있으며 작품 중의 그의 필체는 매우 힘있고 중국의 특색이 잘 살아있다는 평을 듣는다. 1996년 생을 마감한 그는 생전에 상하이 예술학교 교수, 중국미술가협회의 고문, 상하이 교통대학 예술연구실의 고문, 화동사범대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신중국의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상하이 중국화원의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주지찬은 당시 화풍이 원숙하고 생동감이 있다는 호평과 함께 신예화가로 급부상한다. 주지찬의 유화작품 <풍경(风景)>은 1918년 쑤저우 사생대회에서 입선하였으며 1929년에는 중국화 <춘한(春寒)>, 유화 <노고(劳苦)>,<정물(静物)> 등이 제 1회 전국 미술대전에서 입상했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은 각종 미술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그의 실력을 검증시켰다. 또한 주지찬은 <주지찬화집(《朱屺瞻画集》)>, <피쓰쥐화담(《癖斯居画谈》)>, (주지찬화선(《朱屺瞻画选》)> 등을 엮어내며 자신의 작품을 중국 전역은 물론 해외까지 곳곳으로 알렸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의 시작으로 인해 그는 붓을 내려놓게 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7년 다시 활동을 게재했다. 1979년 88살의 그는 <홍매도(红梅图)>를 그렸으며 92살에도 <포도화(葡萄图)>를 내놓으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이에 상하이시정부는 그의 화가 인생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루쉰공원(鲁迅公园)에 주지찬예술관(朱屺瞻艺术馆)을 세웠다. 주지찬예술관에는 현재 다수의 그의 작품이 소장, 전시되어 있으며 중국 화가들의 예술 교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복단대 학생기자 홍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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