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과학자-1] 중국의 우주 영웅 양리웨이(杨利伟)

[2012-05-25, 09:53:40] 상하이저널
바야흐로 인공위성이 보편화된 시대가 왔다. 강대국들은 기술력 제고와 군사적인 목적으로 우주 사업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권에서는 중국이 제일 먼저 2003년에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2003년 10월, 중국은 주천위성발사중심(酒泉卫星发射中心)에서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조우5호(神舟五号)를 발사하였다. 선조우 5호는 최대 탑승 인원은 3명이지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 양리웨이(杨利伟)1명만 탑승하였다. 선회 고도는 200~350㎞이며, 착륙 때는 양리웨이가 탄 반환선과 궤도 선으로 분리되었다. 반환 선은 지상 10㎞ 상공에서 낙하산을 펴고 속도를 줄이면서 초속 3m의 속도로 착륙하였고, 궤도 선은 이후에도 계속 우주 궤도를 돌면서 6개월 동안 과학 실험 임무를 수행한다.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동안 선저우 5호에서는 용정차•무•토마토•가지 등의 종자를 이용해 무중력 상태에서 유전자 변이실험을 하는 등 고해상도의 이미지 촬영 카메라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발사 비용은 총 28만 달러가 들었다. 선저우 5호의 발사 성공으로 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유인 우주선 발사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약 15일 여 동안 지구 궤도를 선회한 후 귀환한 선조우 5호의 성공은 우주비행사 양리웨이의 손 안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중국 13억 인구 중 최초의 우주인이며, 동시에 중국인들의 추대를 받는 우주영웅이 되었다. 양리웨이는 랴오닝성(辽宁省) 호로도시(葫芦岛市) 수중현(绥中县) 출생으로, 발해만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유년시절의 꿈은 ‘언젠가는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이었다.
1983년, 양리웨이는 공군 제8비행학원에 입학하였다. 4년 동안의 공부와 훈련과정을 거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공군이 되었다. 그의 유년시절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 조종사가 된 후 그는 일에 매진하였다.

1996년에 국가에서 우주인모집공고를 보고, 그는 우주비행사라는 새로운 꿈을 안고 신청을 하였다. 각종 신체검사와 임상의학 실험 등등 여러 종류의 테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 하고, 5번의 정식 우주비행사 시험 중에서 1차 99.5점, 2차99.7점, 3차 100점등 우수한 성적으로 전문기술종합시험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1998년 1월 드디어 13명의 동기들과 중국의 제 1 대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그가 노력과 열정 끝에 중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됐을 때, 혼자 1350시간 동안 우주를 비행했다. 우주선이 지구를 일곱 바퀴째를 돌던 순간 그는 중국의 국기와 연합국기를 꺼내 들고, 중국인민공화국과, 전세계 인류평화를 소망했다.

양리웨이가 15일간의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다시 돌아 왔을 때, 우주기지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성공이 아니고,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내었다. 일반적인 완벽함이 아니고 특별한 완벽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의 공헌을 인정했다. 또, 그는 귀환한 후 인터뷰에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조종석의 모든 의표들과, 조종버튼을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색깔, 위치, 작용, 작동할 때 주의할 점까지도 모두 기억한다.”라고 회고했다.

현재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소장(少将) 직함으로, 중국의 유인우주선 사무실의 부주임이다. 중국이 키워낸 제 1대 우주인이라는 명예와 중공17대 에서 중앙 후보위원으로 뽑혔다.

중국은 2020년까지 우주정거장을 완성할 계획이다. 중국은 또한 무인 달 탐사선을 발사해 달 표면을 조사할 계획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2020년 중국의 유인 달 탐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이러한 원대한 우주계획을 가지게 된 것 중 하나는 누구보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과학을 사랑했던 우주영웅 양리웨이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 복단대 학생기자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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