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자와 떠나는 문화 상하이 명인 고거 ② 중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첸싱춘’

[2012-11-16, 23:00:00]
 
 
 
 
 
 
 
중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첸싱춘’
 
쳰싱춘(錢杏邨)은 문화비평가이자 작가이자 문학사가이다. 필명은 아영(阿英)이다. 첸싱춘은 1900년 2월 6일 출생해 청년시절 5.4 운동에 가담했다.
 
1926년 공산당에 가입했고 그 다음해 제 1차 국내혁명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국내혁명전행이 실패로 끝나자 우한(武汉)으로 피신, 그 해 8월에야 상하이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절 쳰싱춘은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태양사(太阳社)를 조직하게 된다. 공산당원이었던 이들은 혁명 문학을 추구했다. 창조사(創造社) 그룹과 더불어 공산 혁명을 지향했지만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이들은 국민당이 부르주아적 계급연합으로 실패했다고 비판하며 철저한 노동자, 농민과 문학 및 정치의 결합을 주장했다. 《죽은 아큐(阿Q)시대》라는 책을 통해 그들은 계몽적 문학을 추구했던 루쉰(魯迅)을 이미 과거의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문학 작가는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쳰싱춘은 상하이로 피신해 홀로 외롭게 있을 때 3개의 위대한 극 작품, 남명사극(南明史剧)을 완성하였다. 그 중 대표작은 <해국영웅(海国英雄)>인데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영웅 정성공(郑成功)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 명나라 사람으로 아빠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떠나자 아버지와의 연을 끊는다. 그 이후 그는 청나라를 부수고 명나라를 세우자는 부흥운동을 펼치게 된다.

쳰싱춘은 1930년 중국좌익작가연맹상무위원 지명되어 중국현대문학을 평론하고 후기 청나라 문학을 수집, 정리했다. 이러한 작품을 써내면서 공산당에서 두각을 보인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49년 화북문학연맹주석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重庆南路205弄38号 지역에 가면 쳰싱춘이 상하이 피신 당시 머물던 집이 남아있다. 현재는 상하이시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되어 당시 쳰싱춘의 외로웠던 옛 모습이 소박한 집의 모습 그리고 환경들과 어우러져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지금은 다른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들어가보고 할 수는 없었지만 수많은 사상들이 오고 가던 어지러웠던 세상에서, 자신만의 신의와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강인한 쳰싱춘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고등부 학생기자 김성태(상해한국학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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