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 자녀 '떠돌이 학교생활'

[2013-12-13, 08:34:12] 상하이저널
도·농 격차의 그늘…베이징 농민공 학교

중국 수도 베이징 동북쪽 외곽 창핑구의 간선도로를 달리던 승합차가 지하철 5호선 종점인 톈퉁위안베이 역을 지나 갓길로 접어들었다. 비포장 흙길 주변으로 베이징 서민들의 여염집이 이어졌다. 주황색 벽돌로 쌓은 단층집들 사이사이로 고물상과 폐품 분리수거장, 중고가전 수리점 등 구멍가게가 줄을 이었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농민공 출신들이 모여사는 이곳 둥산치 마을엔 '경제실용방'이라고 불리는 이런 서민 임대주택 30만호가량이 모여 있다.

 
 
지난 10월 말 찾아간 이 마을엔 농민공의 자녀들이 다니는 즈취안 학교가 있다. 중국에선 일자리를 찾는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을 자주 옮겨다니는 학생들을 '류둥쯔뉘'(流動子女), '수이첸쯔뉘'(隨遷子女)라고 부른다. 학교 앞엔 임자 없는 무덤이 10여기 남아 있다. 학교가 공동묘지 주변에 터를 잡은 탓이다.

'지혜의 샘'(智泉)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소학교는 2000년 교사 출신인 친지제(47) 교장이 23명의 학생을 모아 설립했다. 지금은 유치원생부터 9학년까지 8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학년마다 두 반이 편성돼 있다. 한반 학생은 40명이 조금 못 된다.

시설은 열악했다. 예닐곱 그루의 포플러 나무가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운동장과 다섯동의 단층 교실 건물을 가른다. 진창이던 운동장은 최근 시멘트로 포장됐다. 교실 바닥도 시멘트다. 천장과 벽면의 회칠이 벗겨져 있다. 기자재라고는 오래돼 빙판처럼 반질반질한 칠판이 전부다. 일부 교실의 창문이 깨져있다. 난방 시설이 형편없어 학생들은 발이 시리다고 했다.

농민공 학교 시설 낡고 난방 안돼, 교사도 대우 낮아 구인난 시달려
한 학기 지나면 학생 1/4 바뀌어 베이징 시내에만 120곳 이르러
후커우 없어 공립학교 진학 못해 등록금 19만원 부담 학업 포기도
부모 관심 적고 환경 적응 어렵지만 꿈 키우는 아이들·교사 열정 드높아
떠돌이 도시 농민공 2억3600만명
정부 "후커우 전면 개혁" 밝혔지만 "대도시 인구 엄격 제한" 못박아


즈취안 학교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삼륜차를 몰며 주변의 폐품이나 중고물품을 수집하거나 지하철역 인근이나 길거리에서 전병과 삶은 달걀을 파는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가정부나 회사의 청소부로 일하거나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는 이들도 많다. 교실 밖 건물 벽 칠판에 적힌 "환잉신퉁쉐"(歡迎 新同學·새 친구들을 환영합니다)란 말은 한해 내내 유효하다. 학생들은 언제든 떠나고 새로 들어온다. 베이징 시내엔 이런 농민공학교가 120여곳 있다.

친 교장은 "한 학기가 지나면 전교생의 4분의 1가량인 200여명이 바뀐다. 부모들이 일자리를 따라 떠돌다 보니 학교를 오래 다니는 학생이 드물다. 일부 학생은 한 학기 만에 전학을 가기도 한다. 이게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장애물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사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부모를 따라 다시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는 후커우(호적) 없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농민공 등 유동인구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억3600만명이라고 지난 9월 발표했다.

학부모들이 생활에 쫓기는 탓에 자녀한테 미처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사정은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 20대 교사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미처 깨기도 전에 일터로 나갔다가 밤늦게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들어온다"고 했다. 즈취안 학교의 한학기 학비는 1100위안(19만원)가량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도시 서민인 학부모들에겐 부담이라고 한다. 베이징시의 후커우가 있으면 정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 갈 수 있지만, 후커우가 없는 이들 농촌 출신 아이들은 공립학교 진학이 어렵다. 일부 학생들은 이 학비마저 감당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한다. 교사들도 다른 일반학교 교사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 2000위안가량의 월급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음악·체육 교사는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교장의 지인이 음악 수업을 하는 형편이다.

중국 정부도 도-농 격차 문제를 절감하고 있다. 9월 중국 광시좡족 자치구 구이린에서는 한 농민공이 자녀의 입학을 거부한 지역 학교 앞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학생 28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는 "이농 인구의 시민화를 추진해 농민층과 현대화의 과실을 나눠야 한다"며 "후커우 제도 개혁을 가속화해 소도시의 후커우를 전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당은 이를 위해 소도시에 정착한 농민을 교육·주거·의료 등 기본적인 도시 사회보장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도시 인구 규모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못박아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농민공과 자녀들은 향후 상당 기간 차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진싼린 국무원 개발연구센터 농촌경제연구부 주임은 "2030년께가 돼야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전면적인 후커우 개방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의 열정은 높았다. 중국어 담당 교사는 "어릴 적부터 가르쳐온 학생들이 있고 정이 들어 학교를 떠나기 어렵다. 부모들이 학생들의 공부를 봐주기 어려우니 우리가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밝은 표정의 아이들은 쉼없이 친구들과 재잘거렸다. 올해 중국 내륙 쓰촨성에서 부모를 따라 베이징에 왔다는 수진펑(9)은 "이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좋다. 열심히 공부해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한다. 세탁기 수리를 하는 아버지와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왕간(10)도 "경찰이 꿈이다"라며 웃었다. 2년째 중국 농민공 학교를 지원하며 한류 스타들과 농민공 자녀 학생들이 참여하는 문화행사를 열고 있는 중국 씨제이이앤엠(CJ EnM)의 김성훈 상무는 "어려운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면 진정한 한-중 문화 교류로 발전할 수 있다"며 "내년부터는 베이징 이외 지역에서도 지원 활동을 펴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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