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름을 딴 징안구(静安区)
징안구에는 유명한 사찰인 징안사(静安寺)가 있다. 징안사는 중국 3국시대 손오(孙吴)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징안구의 명칭도 이 사찰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쉬(徐)씨가 모여살던 곳 쉬후이구(徐汇区)
쉬후이구는 상하이 도심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명나라 말 유명 학자인 서광계(徐光启)가 상하이에 농장을 짓고 농업실험을 하는 한편 저서를 썼다고 한다. 서광계가 타계하자 후손들은 현재의 쉬후이에 서광계의 묘를 만들었고 이 일대에서 거주하는 후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곳은 서씨들의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쉬자서(徐家厍)로 불리게 됐다.
이곳은 두 강이 만나는 곳이기도 해 쉬자후이(徐家汇)라고 불렸으며 여기에서 딴 지역명이 쉬후이구이다.
산의 이름을 딴 바오산구(宝山区)
바오산구는 상하이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지와 섬 두 부분으로 나뉜다. 황푸강과 창장이 만나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해운으로 164개 나라와 지역의 400여개 항구와 연결이 된다.
중국의 유명한 항해가인 정화(郑和)에 의해 해상 '비단의 길'이 개척된 곳이다. 창장입구는 급물살에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았으나 아무런 항해표시도 돼있지 않았다. 명성조 주체(朱棣)황제는 창장입구 남안에 흙으로 쌓아올린 산을 만들어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밝혀 오가는 선박들에게 등대의 역할을 하게 했다. 백성들은 이 산을 '바오산'이라고 불렀다. 그후 인공산은 바다속에 잠겼으나 바오산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상용되고 있다.
길이름에서 유래한 푸퉈구(普陀区)
푸퉈구는 상하이도심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으로 창닝구, 징안구와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자베이구와 인접했으며 서쪽으로는 자딩구와, 북으로는 바오산과 이웃해있다.
항일전쟁시기 상하이에는 31개 경찰자치구역이 설치됐다. 쑤저우허(苏州河) 이남지역은 제13구역이었는데 1947년에 푸퉈구로 이름을 바꿨다. 푸퉈라는 명칭은 1920년을 전후로 공동 조계지가 만든 길인 푸퉈루(普陀路)라는 길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푸퉈루라는 길이름은 저장성의 푸퉈산(普陀山) 이름을 본딴 것이다.
황푸강에서 얻은 이름 황푸구(黄浦区)
상하이 도심인 황푸구는 인민광장, 난징동로, 위위안, 와이탄 등 주요 관광지들이 밀집된 곳이며 창문만 열면 황푸강 전경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남송시기(南宋时期), 황푸탕(黄浦塘)이라 불리는 우숭장(吴淞江)의 한 갈래 물줄기가 명나라때 하천 넓이가 확대 건설돼 황푸장(黄浦江)이라 불리게 됐다. 항일전쟁 승리 후 상하이가 30개 구(区)로 나뉘게 됐는데 황푸장과 인접한 제1구역이 강이름을 따서 황푸구가 되었다.
길이름에서 딴 창닝구(长宁区)
창닝루(长宁路)는 창닝구를 가로지르는 길 이름이다. 1901년 조계지였던 이곳에 길이 생기고 영국영사관이 길이름을 바이리난루(白利南路)라고 지었다. 1943년 바이리난루는 스촨성(四川省)에 있는 현(县)의 이름을 따서 창닝루라고 불렀다. 그러다 1945년 이 구역을 횡단하는 길인 창닝루의 이름을 따서 칭닝구가 되었고 현재까지 그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항구이름을 딴 홍커우구(虹口区)
홍커우는 역사상 크고작은 하천 50여개가 흐르던 곳이다. 홍커우항(虹口港)도 주요 하천 중 하나에 세워진 항구였고 과거에는 사홍(沙洪)이라 불렸다. 사홍과 훙푸장이 만나는 곳을 홍커우(洪口)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표기가 발음이 같은 홍커우(虹口)로 바뀌었다.
항구이름을 딴 양푸구(杨浦区)
양푸구라는 명칭도 이곳에 있는 하천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날 이곳에는 100여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었으며 서남부에 양수푸항(杨树浦港)이 있었다. 양수푸는 이 지역 중부를 관통하는 주요 하천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하천들은 메꿔졌고 19개의 하도만 남게 됐는데 양수푸도 그 중 하나였다.
수문으로 비롯된 이름 자베이구(闸北区)
쑤저우허에 있는 수문 2개로부터 유래한 명칭이다. 청나라 강희제, 옹정제때 각각 2개의 수문을 만들었는데 각각 오래됐다는 의미의 라오자(老闸)와 새로 만들어졌다는 신자(新闸)라고 불렀다. 상하이 도심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수문이 있다는 의미에서 자베이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진(镇) 명칭에서 유래한 민항구(闵行区)
민항진(闵行镇)은 명나라 효종제 재위기간(1488~1505)에는 민항시(敏行市)였다가 무종황제(재위 1506~1521) 시기에 '민항(闵行)'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청룡진과 우푸(五浦)에서 얻은 이름 칭푸구(青浦区)
명나라 세종황제때(1522~1566) 이곳에 청룡현을 설치해 청룡진(青龙镇)을 다스리도록 했는데, 청룡현의 동부에 우푸(五浦)가 있었던 까닭에 칭푸(青浦)라는 이름이 생기게 됐다.
섬이름에서 유래한 진산구(金山区)
진산구의 명칭은 근해(육지에서 가까운 바다)의 세개 섬이름에서 유래했다. 진산 3개섬은 다진산(大金山), 샤오진산(小金山), 푸산(浮山)으로, 옛날에는 이 세개 섬을 통틀어서 진산(金山)이라고 불렀다. 다진산의 최고봉은 해발 105.03미터로 당시 상하이에서 가장 높은 지면이었으나 송나라때 바다에 잠기고 현재 3개 봉우리만 해수면위로 올라와 있다.
남송시기 연호에서 딴 자딩구(嘉定区)
자딩(嘉定)은 남송(南宋) 영종(宁宗)의 연호(1208~1224년)에서 따온 이름이다.
강이름에서 유래한 송장구(松江区)
상하이 서남부에 위치한 송장구는 '상하이의 뿌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동한(东汉)시기 동오의 명장 육손(陆逊)이 화정후(华亭侯)로 봉해져 옛날에는 송장구가 화팅(华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나라때 화팅현(县)이 됐다가 원나라때 화팅부(府)로 격상되기도 했다.
화팅부 경내에 우숭장(吴淞江)이 흐르고 있어 그 이듬해 화팅부의 명칭을 송장부(松江府)로 바뀌었고 송장구의 명칭도 이로부터 유래하게 됐다.
2가지 설이 있는 펑시엔(奉贤)
펑시엔의 명칭은 공자의 72명 제자 중 한 사람인 언자(言子)가 남방일대에서 공자의 학설을 전파한데서 비롯됐다는 설과 명나라때 펑시엔징(奉贤泾)이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어서 펑시엔으로 불리게 됐다는 설 두가지가 있다.
넓고 깨끗한 땅 총밍현(崇明县)
총밍은 창장의 입해구에 위치하고 있다. 총밍다오의 대부분은 섬들로 구성돼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전 당나라 무덕제 때 총밍다오가 수면위로 솟아올랐으며 당시에는 둥사(东沙)와 시사(西沙)라고 불렀다.
당나라 신룡(무측천(武則天)과 당 중종(中宗) 이현(李显)의 연호로 705.1~707.9 기간 사용됨) 기간 이곳에 진을 설치하고 높을 총(崇)과끝없이 넓다는 뜻의 밍(明)자를 더해 총밍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즉 수면위로 솟아오른 평탄하면서도 넓은, 깨끗한 평지라는 뜻이었다.
황푸강 동쪽이어서 푸동신구(浦东新区)
푸동이라는 명칭은 남송때 가장 먼저 출현했다. 당시 화정현에는 푸동을 포함해 5개의 소금밭이 있었다. 푸동신구는 황푸강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이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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