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Lisa)비퍼(호출기) 김석주

[2016-03-27, 07:03:48] 상하이저널

[세계 속의 한국인②]
리사(Lisa)비퍼(호출기) 김석주


 


지체 장애인 김석주
1949년, 경북 영주군의 한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김석주는 어렸을 때부터 다리를 절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장애를 가진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신체조건에 발목을 잡혀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개인 수리점을 하던 중 1975년 가을, 한 경찰관이 와서 그에게 떡값을 요구했다. 돈이 없었던 김석주는 떡값 상납을 거부했고 이 일로 일주일간 유치장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멀어져 있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다.

 

미국으로의 취업 이민
1976년 7월 김석주는 미국에 도착했다. 도착 당시 김석주가 가진 것이라곤 2급 전자 기술 자격증과 6백여 달러가 전부였다. 맨하튼 시청 앞 전파사에서 수리공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그는 미국 사회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외국인에다 지체 장애까지 앓고 있어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1978년 봄, 김석주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미국 반품 제품들을 수리하는 회사 '유스44'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밤 늦게까지 공장에 남아 일을 했으며, 열정을 증명했다. 사장은 입사 2년반만에 그에게 기술 감독관 자리를 내주었다. 김석주는 감독관을 맡은 이후 더욱 열심히 일에 임했다. 하루종일 목발을 짚고 공장을 다니면서 남은 업무들도 본인이 전부 처리했다.  1년후, 김석주에 대한 사장의 신임은 더욱 높아지면서 그에게 총책임자로 승진시켜준다.

 

리사 비퍼 설립
그러던 1984년,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김석주 또한 불안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판매망을 구축했다. 히스패닉계 거주지인 정션 블러바드에서 작은 판매상을 열었다. 이 작은 판매점이 '리사 비퍼(호출기)'의 모태이다. 김석주는 결국 적자인 '유스44'를 정리하고 자신의 '리사 비퍼' 사업에 올인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1996년, 창업 12년만에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미 연방 통신국으로부터 전파 사용 허가를 받았다. 1998년 11월에는 15개의 송신탑을 갖춘 송신소를 매입하여 자체적으로 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창설한 리사 비퍼는 연매출 1천5백만 달러, 사용자 14만명에 달한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다
현재 김석주는 퀸스 중부 한인회장을 맡아 지역 한국인 동포들의 권익 신장에 큰 몫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사회보다 덜하다는 믿음 하나로 갖고 미국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현재 한인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난 97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상했으며 98년에는 '엘리스 아일랜드(성공한 이민자)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부 학생기자 김상규(화동제2부속중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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