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이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해 범인을 잡아도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할 때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끝나기까지 끝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들을 미제사건이라고 한다. 대륙 전체를 공포에 빠지게 한 중국의 미제사건 두 건을 소개한다.
바이인연쇄살인사건(白银连环杀人案)
커다란 공포가 간쑤성(甘肃省) 바이인시(白银市)를 뒤덮었다. 흉흉한 소문에 따르면 바이인에 ‘살인광’이 나타났다. 그는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을 주로 살해한다. 밤에 자신이 앞서 봐둔 여성의 집에 잠입해 강간한 후 살해하거나 반대로 살해한 뒤 시체를 상대로 강간한다. 또한, 살인범은 매번 범행을 저지른 후 피해자의 신체 기관 중의 한 부분을 잘라놓는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여 년간 바이인에서는 9명의 여성이 살해 당했고, 피의자는 잡히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여성들은 대낮에도 밖에 나가기를 꺼려했고,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경찰이 추측한 바에 따르면 용의자는 64~71년도에 태어났으며 키는 168~176cm쯤 되는 남성이다. 또한 피의자의 범행대상이나 범행방법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피의자는 성기능단속장애와 여성혐오증이 있는 우울증이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1988년 5월 26일 17시, 23세의 평범한 여직원을 대상으로 한 첫 살인이 일어났다. 경찰들은 “그녀를 발견했을 당시 목 부분은 절개되어 있었고, 윗옷은 가슴이 보이도록 벗겨져 있었으며, 하의는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또한 몸 전체에 총 26곳의 칼자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1998년도에 4번, 2000년도, 2001년도, 2002년도까지 각각 1번씩 총 9번의 위와 흡사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대여성들이었다.
10여년에 걸쳐 일어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검찰 당국에서는 범인을 잡기 위하여 수많은 수색방법을 동원하였지만, 범인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댜오아이칭(刁爱青) 사건
황당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중국이라지만 댜오아이칭(刁爱青) 사건은 대륙 전체를 충격에 빠트린 전대미문의 토막살인사건이었다. 일명 ‘난징 1.19사건’ 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정확한 피살시간은 확인할 수 없어 시신을 발견한 1996년 1월 19일에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난징대학교에 다니던 1학년 여학생 댜오아이칭은 농촌에서 갓 올라온 시골처녀였다. 난징으로 올라오기 전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고향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키 165에 쌍꺼풀이 없고 말을 빠르게 하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1996년 1월 10일 밤, 룸메이트의 불찰로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게 되어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던 댜오아이칭은 끝내 기숙사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실종상태였던 그녀는 9일이지난 1월 19일, 학교 근처 도로에서 청소부에게 발견되었다. 하지만 청소부가 발견한 그녀의 시신은 온전하지 못했다. 청소부의 입장에서 본 그것은 그저 비닐 팩에 담겨있던 조각난 고기덩어리였다. 청소부는 그것들을 씻다가 손가락을 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는 범행 당시 시신을 뜨거운 물에 담가두어 익힌 다음 2000여 조각으로 토막살인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을 2000여 조각으로 분해했지만, 잘린 표면이 깨끗하고 조각의 크기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경찰은 피의자가 칼 사용에 있어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의료직 종사자로 추측하였다. 모두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피의자는 공소시효가 지난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번외. 양구 전당포 노부부 피살사건
중국에서 일어난 미제사건만 찾아보기 아쉬워 번외편도 준비했다. 지난 2005년 8월 14일, 한국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의 한 전당포에서 중국인 노부부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처참한 살인사건이었다. 피해자는 중국인 화교 부부였으며, 이들은 1975년부터 전당포를 운영해왔다. 남편 왕 모씨(당시 77세)는 가슴 부위 등 12곳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아내 우 모씨(당시 69세)는 오른쪽 가슴부위 등 3 곳을 흉기에 찔리고 우측 눈 부위가 함몰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들을 처음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부부의 아들(당시 45세)로 근방에 거주하며 전당포에서 잔심부름 등을 해 왔다. 그는 "사건 당일 정오쯤 찾아온 손님의 물품을 확인하기 위해 방안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아주 절친한 면식범의 소행일 것으로 판단, 용의선상이 피해자 부부의 가족들과 전당포의 단골손님 등으로 좁혀졌다.
먼저 경찰은 전당포에 월급통장을 맡기고 돈을 자주 빌려 쓴 군인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탐문수사를 통하여 전역 군인 2명을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이렇다 할 용의점은 찾지 못했다. 경찰은 용의선상에 올랐던 피해자 부부의 가족들에게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진실' 반응이 나왔으며, 목격자 조차 나타나지 않아 수사에 차질을 빚었다.
한 경찰 간부는 “섣불리 말할 수는 없으나 아직까지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은 용의자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초에 수사 과정에 확보한 단서가 거의 없고, 수사 인력도 부족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여 양구 전당포 노부부 피살사건은 아직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언제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를 위험에 아직까지도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 피해자의 가족들까지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은 공소시효가 지나든 지나지 않았든,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부 학생기자 박주은(상해한국학교 11)․권순․여지원(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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