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음악가③]
중국이 낳은 천재 작곡가 녜얼
녜얼(聂耳)은 1912년 윈난성의 쿤밍시에서 태어난 중국의 저명한 작곡가로,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채광가’, ‘대로가’, ‘개로선봉’, ‘마두노동자가’, ‘전진가’, ‘매낭곡’, ‘위로가’ 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비극적인 삶
녜얼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포함한 각종 악기들을 스스로 익혔다. 18세가 되던 해, 녜얼은 돌연 상하이로 떠났고 상하이에 정착한 그 다음 해에 명월가무단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웠다. 이때 ‘채굴의 노래’, ‘부두 노동자의 노래’ 등 공산주의적 성향을 띠는 영화와 연극의 악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가 작곡해온 곡들의 절반 이상이 군가이며 공산주의를 모티브로 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기록에 따르면, 녜얼은 가족의 영향으로 인해 매우 독실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후에 가무단을 탈퇴하고 베이징에서 혁명 음악가로 활동 하며 본격적인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3년, 중국 공산당에 공식적으로 입당하였다. 국민당 당국이 주위의 좌익 예술인들을 무자비하게 구속한다는 소식을 들은 녜얼은 일본에 체류 중이던 형의 권유로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이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일본으로의 망명이라 여기나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거쳐 러시아로 유학할 예정이었다고 전해진다. ‘의용군 진행곡’ 은 영화 <풍운아녀>의 주제가로 삼엄한 감시를 피해 녜얼이 은밀하게 가사를 작곡하였고, 일본서 머물 당시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녜얼은 ‘의용군 진행곡’ 을 작곡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해변에서 친구와 수영을 하다가 익사하여 향년 24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짧은 인생 동안 중국의 민족정신을 대표한 많은 작품을 창작했으며 중국의 혁명 음악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의용군 진행곡
작곡가 녜얼이 작곡하고 작사가 톈한(田汉)이 작사한 이 곡은 훗날 중국의 국가가 되어 중국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강렬한 리듬과 장엄한 멜로디의 ‘의용군 진행곡(义勇军 进行曲)’은 1935년 당시 중국 당국이 일본 제국의 위협에 시달릴 때 항일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한때 작사가 톈한이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 죄로 숙청당하며 금지곡이 되었으나 국민들의 항의를 통해 다시 공식적으로 중국의 국가로 채택되었다. ‘의용군 진행곡’ 은 군인들이 군가를 부르면서 사기가 북돋아지고 같은 가치관으로 합심하듯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조국을 위한 희생정신을 자극한다.
起来!不愿做奴隶的人们!
일어나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
把我们的血肉,筑成我们新的长城!
우리의 피와 살로 새 장성을 쌓아가자!
中华民族到了最危险的时候,
중화민족이 가장 위험한 시기에 있다.
每个人被迫着发出最后的吼声
모든 사람은 최후의 외침으로
起来! 起来! 起来!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我们万众一心,冒着敌人的炮火前进!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적들의 포화를 무릎 쓰고 전진!
冒着敌人的炮火前进!
적들의 포화를 무릎 쓰고 전진!
前进! 前进! 进!
전진! 전진! 나가자!
이름의 유래
사실 녜얼의 본명은 녜소(聂守)이다. 녜얼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한번 들은 곡을 바로 그 자리에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녜얼을 너무 놀라워 ‘귀(耳朵)’ 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사교회에서 춤을 추고 다른 참석자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파티를 즐기던 녜얼은 두 귀를 앞뒤로 움직이는 장기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런 녜얼을 보며 사람들은 녜얼을 녜얼박사(聂耳博士) 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 후부터 녜소는 녜얼이 되었다.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천재 작곡가 녜얼이 있기까지 녜얼의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다. 녜얼의 어머니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고 어린 녜얼에게 종종 민족음악을 불러주었다고 한다. 면소재의 옷을 사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녜얼은 어렸을 때부터 돈을 절약해가며 민족노래들을 수집해왔다. 시장 길을 걷다 우연히 새로운 분야의 서양음악을 접하게 된 녜얼은 음악에 푹 빠져 돈을 더 모아 그토록 고대하던 바이올린을 우여곡절 끝에 사게 된다. 그 후로 녜얼은 학창시절을 줄곧 작곡을 하며 음악에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며 지내왔다.
고등부 학생기자 최유진(상해중학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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