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서 비데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한국의 미사일고고도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에 대한 전 방위적인 보복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들여오기로 한 미국산 사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공식적으로 중국이 사드와 관련해 어떠한 보복조처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조처로 볼 수 있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품질 검사 당국은 최근 한국산 비데에 대해 불량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20일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 발표한 수입 비데 품질검사 결과에 따르면 106개 조사 대상 중 47개 품목이 불합격 처분을 받았으며 이중 43개가 한국제품이었다.
질검총국은 이들 업체의 비데에 설명서 및 표시 결함이 있거나 입력 파워와 전류 문제 그리고 전원 연결 문제가 있어 불합격 처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둥(山東)성 검사검역국도 최근 한국산 비데와 면도기에 대해 국가안전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리콜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민항국은 중국의 음력설인 춘제(春節·설) 연휴 시즌인 1~2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수송을 위해 한국 항공사가 신청한 전세기 운항 역시 무더기로 불허 처분을 내렸다. 같은 목적으로 한국 국토교통부에 전세기 운항 신청을 냈던 중국 국적 항공사들도 이날 돌연 신청 철회 의사를 밝혔다. 불허 사유에 대해 중국 민항국은 '이유가 따로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주재 중국 대사관의 비자발급도 훨씬 까다로워졌다. 여행사를 통한 비자 발급을 거부한 채 여행객들이 직접 비자 수속을 밟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미 상을 수상한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의 중국 콘서트도 갑자기 취소됐다. 다른 한국 팝스타들도 자신들이 중국 사드 보복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인들과 국회의원, 애널리스트들은 중국이 사드에 보복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의 이동복 통상연구실장은 “중국은 보복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이것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롯데 부동산 개발사업을 일부 중단시켰다. 불시 납세ㆍ소방안전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롯데 대변인은 “우리는 중국의 조사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사드 관련설을 부인했다.
중국의 보복 움직임에 한국 최대 화장품업체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지난해 중반 이후 33% 가량 하락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사드 보복행위 피해 상황을 접수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였다.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으로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의 이동복 통상연구실장은 “중국은 보복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다만 이것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은 사드 문제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동맹과 적대 관계에 새로운 파장을 더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다가서고 있다. 지난주 북한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암살된 사건은 김정은 정권의 잔혹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실험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드는 현재 탄핵 소추로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승인을 한 사안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도 사드 배치를 찬성하고 있다.
한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까칠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9일 논평을 통해 "한반도 사드 배치는 지역 안보와 안정에 위협이 되며 롯데그룹 경영진은 사드 부지로 골프장을 제공할지 아직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으나 지역 관계를 격화시킬 수 있는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같은 날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원의 말을 인용, "롯데그룹이 사드 부지를 제공할 경우 중국 사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의 행동이 사드에 대한 불만보다도 보호무역주의 기류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대중국 수출이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행동이 사드에 대한 불만보다는 보호무역주의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는 추론이 나왔다. 미국 워싱턴 소재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선임연구원인 트로이 스탠가론(Troy Stangarone)은 “피해망상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은 석 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한국의 대 중국 수출 규모는 1240억 달러에 달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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