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미식회’ 런치투어 ③
왕의 식탁, 소박한 ‘문재인총통세트’
상하이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과 음식을 만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상하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교민들을 위해 런치투어를 시작한다. 매주 화요일에 떠나는 ‘화요미식회’. 일주일에 한번 홍췐루를 벗어나 나를 위한 힐링타임을 가져보자.
둬룬루 문인거리의 ‘용허도우장 永和豆浆(YonHo)’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화제가 됐다. 수많은 뉴스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이슈를 낳았던 음식 ‘문재인총통세트’다. 문 대통령 부부는 베이징 용허센장(永和鲜浆)에서 소박한 아침식사를 했다. 요우티아오(油条), 훈툰(馄饨), 도우장(豆浆), 샤오롱바오(小笼包), 이 4가지 음식값은 불과 35위안.
화요미식회 세번째 런치투어로 문재인총통타오찬(套餐 세트메뉴)을 선택했다. 중국 서민들의 공식 아침메뉴인 도우장과 요우티아오를 ‘미식’ 반열에 올려놓는 곳, 문화명인거리 둬룬루(多伦路)에서의 브런치라면 가능해진다.
도우장과 요우티아오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문 대통령 내외가 그릇을 싹 비웠다는 ‘용허센장’은 아쉽게도 상하이에는 없는 음식점 브랜드다. 대신 중국언론들이 문 대통령 조찬장소로 보도한 ‘용허도우장(永和豆浆)’을 찾았다. 타이완 계열 프랜차이즈로 상하이 구석구석 70여 점포가 있다.
용허도우장은 둬룬루 정문(东北门)에서 10여분 거리에 새로 들어선 뤼디촹커(绿地创客) 건물 1층에 위치한다. 서민적이지 않은 외관에 노란 의자, 노란 전등갓의 노란톤 인테리어는 문재인 세트에 어울리는 정치색을 띄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의자 마다 쓰여있는 ‘도우장 요우티아오(豆浆油条)’ 노랫말에 시선이 머문다.
“豆将离不开油条让我爱你爱到老”
“도우장은 요우티아오를 떠나 살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을 오래도록 사랑하게 해주세요.”
도우장과 요우티아오를 연인 사이로 비유한 노래다. 유치하게 들리지만 두 메뉴를 가장 잘 표현했다. 중국 가수 린준지(林俊杰)의 노래로 엑소의 루한이 불러 화제가 됐던 곡이기도 하다.
용허도우장의 셀프 ‘문재인 메뉴’
한궈총통타오찬(韩国总统套餐)을 주문하자 복무원이 ‘문재인타오찬’에 대해 알은체 한다. 그러나 세트메뉴는 출시되지 않았으니 단품으로 주문할 것을 권한다. 이곳 메뉴에는 샤오롱바오가 없어 3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에 피단죽(皮蛋粥)과 차오미펀(炒米粉) 등 몇 가지 음식을 추가했다. 3인 기준 7가지 메뉴, 총 75위안이다.
요우티아오(油条王) 5元
한국에서는 요우티아오를 기름에 튀긴 꽈배기로 설명한다. 요우티아오 고향은 항저우다. 남송시대 나약한 고종의 재상에는 금나라와 화친을 강조했던 ‘진회’와 금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악비’가 있었다. 전쟁에 승승장구한 악비를 음해해 제거한 진회가 공포정치를 펼치자 서민들은 밀가루 반죽으로 진회 부부를 형상화해 뜨거운 기름에 튀기겠다는 분노를 드러내면서 탄생한 음식이 바로 요우티아오다. 항저우 ‘악비 묘’에 가면 무릎 끓고 사죄하는 진회 부부의 동상이 있다.
요우티아오의 맛은 린준지의 노랫말 그대로다. 연인을 요우티아오에 비유하며 ‘단순한 게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반죽 모양에 멋을 부리지도, 시럽과 소스를 뿌리지도, 앙금이나 다른 속재료를 전혀 넣지도 않은 단순해서 아름다운(?) ‘미식’이다.
도우장(豆浆) 6元
겨울에 김 모락모락 도우장 한 잔에 얼었던 몸이 녹는다. 한국인들 입맛에는 묽고 심심한 ‘두유’다. 기호에 따라 비릿하기도, 고소하기도 한 중국 국민음료. 기름을 한껏 머금은 요우티아오 한 입에 도우장 한 모금이 따라온다.
훈툰(小馄饨) 12元
역시 겨울에 어울리는 메뉴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만둣국과 맛, 모양 모두 비슷하다. 얇은 피에 한입 쏙 작은 크기의 만두가 뜨끈한 탕에 들어 있다. 보통 채소에 고기 또는 새우 소를 넣는다. 봄에는 냉이를 넣기도 한다. 용허도우장에는 고기 소만 있다. 만두가 큰 훈툰도 있지만 샤오훈툰을 권한다.
<永和豆浆>
•虹口区东江湾路151号F111
•둬룬루 동북문에서 동장완루(东江湾路)방향으로 도보 10여분
•021)6628-1886
둬룬루, 100년 전 올드 상하이의 ‘혼’
둬룬루는 ‘ㄴ자’ 모양의 600미터 정도되는 짧은 거리다. 입구에 ‘상하이 옛동네(海上旧里)’라고 쓰여진 큰 돌문을 통과하면 ‘백투더퓨처’ 주인공이 된다. 상하이 예술혼이 불탔던 1920~1930년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이상(海上)’은 청나라 말에 썼던 상하이의 별칭이다. 당시 문인들은 필명에 '하이상'을 붙이기 좋아했다고 한다.
동장완루(东江湾路) 방향 용허도우장과 가까운 '동북문'
'海上旧里'가 적힌 정문.
둬룬현대미술관 쪽, 10호선과 비교적 가까운 '서남문'
1920년대 지어진 '우수건축물들'
둬룬루에는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당시 중화예술대학의 기숙사였던 건물(145号) 등 1920년대에 건축되고 해방 후 부분 재건하며 옛 모습을 유지하려 애쓴 후손들의 정신이 아름답다. 또한 둬룬루는 젓가락, 시계, 화폐 등 작은 테마 박물관과 갤러리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현재는 아쉽게도 대부분 박물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서남문 끄트머리에 자리한 둬룬현대미술관(29号)은 이달 24일부터 두 달 간 청년미술대전을 연다. 또 상하이의 교회 중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기독교장로회 소속 ‘홍더탕(鸿德堂 59号)’도 둬룬루에 있다. 성탄 예배와 공연(24일, 25일 오후 7시)을 준비 중이다.
중화예술대학의 기숙사 多伦路145号
기독교장로회 소속 '홍더탕 鸿德堂' 多伦路59号
둬룬현대미술관(多伦路59号)
둬룬루 곳곳에 세워진 문화명인들의 동상
1930년대 상하이는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번영한 시기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절이기도 하다. 격동의 시기, 중국 현대문학이 꽃피었던 당시, 루쉰(魯迅), 취치우바이(瞿秋白), 마오순(矛盾), 궈모로(郭沫若). 로우스(柔石) 등 문화명인들은 100년 전 이 길에서 문예 담론을 나눴을 것이다. 둬룬루의 단단한 돌길 위에 서면 라오(老) 상하이의 후미진 살롱에서 예술과 인생과 이데올로기를 얘기하며 시대를 아파했을 그들의 숨결이 전해진다. 둬룬루 곳곳에 세워진 동상들이 말을 건네온다. 100년 후 둬룬루 밖 상하이는 어떤 모습인지, 중국은 지금 어떤 나라인지.
<多伦路文化名人街>
•동북문: 3호선 东宝兴路역 1번 출구
•서남문: 4호선, 10호선 海伦路역 5번 출구
고수미 기자
사진_표그라픽스
중국 문학의 아버지 루쉰 鲁迅(1881~1936)
루쉰과 두 청년
중국 초기 공산당 지도자 취치우바이 瞿秋白(1899-1935), 산인루(山阴路)에 생가가 있다.
취추이바이가 지어준 이름 딩링(丁玲), 마오쩌둥과도 인연이 깊은 <소피의 일기> 저자
국민당에 의해 살해된 좌익작가연맹의 청년작가 로우스 柔石(190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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