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창문을 연다. 빛나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3층 우리 집까지 누가 누가 더 큰가 키재기를 하며 가슴을 한껏 부풀린 초록 손들 이 인사를 건넨다. 제법 높은 이곳까지 뻗어낸 가지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오늘의 체감 온도는 코끝이 찡하게 추운 영하, 흡사 시베리아의 추위 그것이다. 코로나가 앗아가 버린 2022년 상해의 봄, 그 아스라한 시간의 파편들. 우리의 4월은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3월 28일 새벽 5시에 시작된 포동 지역 봉쇄의 끝은 아직도 오리무중. 봉쇄 6주 차에 접어든 오늘도 나와 가족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익숙해진 자가 키트로 핵산검사를 했다. 요즘 상하이시는 봉쇄 지역, 관리지역, 방범 지역으로 나눠 관리를 한다. 봉쇄 지역은 매일 핵산 검사를 한다. 관리 지역은 핵산 검사 3회에 항원 4회을 하며 내가 그 지역에 포함된다. 방범 지역은 자기 구역에서의 이동은 가능하며 매일 항원 검사를 실시함을 원칙이다.
상하이 중심적 시각으로 보면 꽤 많은 구역이 사회적 칭링으로 향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자의반 타의 반으로 보폭을 줄이고 있는 게 현실인듯하다. 어릴 때 하던 고무줄놀이가 떠오른다. 가늘고 약해 보이는 검정 고무줄은 점점 높아져가고 튕겨 나오기만 하는지. 이 고비가 딱 그때 친구의 어깨에 걸려있던 고무줄만 같다. 넘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뭐 하나 확실치 않은 중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봉쇄 첫날부터 나의 건강을 격하게 걱정해 주는 상해시. 부모 자식 사이도 이렇게까지 매일 안부를 묻기는 어려운 요즘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가족수대로 나눠주던 항원키트도 이제는 관리사무소 안에 마련되어 있는 박스 안에서 뽑기 뽑듯 한 움큼씩 가지고 온다. 하루에 한 번, 어떤 날은 두 번도 코를 찌르는 통에 책상 서랍 안에 한 가득이다.
우리 샤오취(小区)도 더 작은 구역들로 나눠 항원 검사 결과를 시간 내에 올려 확인을 한다. 아파트 두 동을 묶어 위챗방을 만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검사와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면 이에 따라 각지에서 항원 검사 결과를 찍어 올린다. 첫 며칠 동안 건조하게 올라오던 사진들이 날이 가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그림을 그리거나 메시지를 남긴 집도 있고 장난감이나 다른 물건들로 오늘의 기분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 중 가족 수만큼 기둥을 그려 그 안에 항원 결과를 넣어 찍어 올리던 집이 있었다. 무심코 넘기던 그 집의 사진이 매번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두어 번의 테스트가 지나고 나서였다. 그는 자신과 아이가 현재 상황을 잘 버티고 지낼 수 있도록 제안한 이벤트라고 위챗방에서 간단히 설명을 했다. 나 역시 매일 그린 캘리로 마음을 더했다.
인류의 역사를 봐도 어렵고 힘들 때면 손끝으로 선을 그렸으며 발끝으로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혹자는 예술이 가진 자의 사치라 말하지만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원시시대의 벽화나 다른 작품들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나은 내일이 오길 바라는 소망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긴다. 나는 그들의 사진 속에서 이러한 바램을 느꼈다. 굳게 닫힌 문 위에 걸려있는 자물쇠에 꺾이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기며. 겨울이 있기에 봄은 더욱 찬란히 빛난다. 오늘의 고됨이 삶이란 토양에 좋은 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제가 피워낼 꽃의 향과 과실의 달큼함이 되리라. 열린 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청신한 얼굴”이라는 시구처럼 참 이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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