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마블 영화를 못본다?

[2022-06-20, 11:00:54] 상하이저널
지난 4월 개봉한 해리포터 프리퀄 시리즈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5월 개봉한 마블 시리즈 <닥터 스트레인지 2>는 국내외의 많은 영화 팬들이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온 기대작으로, 개봉과 동시에 흥행에 성공하며 그 화제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이 영화들, 중국에서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일부 대사가 삭제된 채 개봉됐고,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중국에서 개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마음 편히 해외 영화를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정부의 해외 영화 검열 제도

중국은 2018년까지 국가광전충국(中国国家广电总局) 내 기구에서 외국산 영화의 검열을 담당했다. 해외 영화가 중국 내에서 개봉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광전총국의 검열 절차를 통해 영화 전체의 내용을 검사받고 상영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공산당 중앙 선전부(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宣传部)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행정기관에서 담당하던 업무를 중앙정부가 직접 시행한다는 것은 영화 산업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음을 의미하며,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이 해외 영화 검열에 적용될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은 현재 <영화관리조례(电影管理条例)>에 관한 규정을 바탕으로 영화의 배급, 상영, 수입, 수출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고 있다. 영화관리조례 24조에서 명시한 영화 속에서 표현될 수 없는 내용은 총 10개로, 아래 내용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영화는 개봉에 제한받을 수 있다.

<중국, 영화 표현 금지 내용 10가지>
1.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반대되는 내용
2. 국가의 통일, 주권과 영토의 보전을 해치는 내용
3. 국가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국가 안보를 해치는 내용 및 국가의 명예와 이익을 해치는 내용
4. 민족 증오, 민족 차별 민족 파괴를 선동하는 내용 및 민족의 풍속이나 관습을 침해하는 내용
5. 사이비 종교와 미신 등의 내용
6.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내용
7. 음란/도박/폭력을 선전하거나 범죄를 교사하는 내용
8. 타인에 대한 모욕 및 비방적인 내용,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내용
9. 사회 공중도덕이나 민족 전통문화를 해치는 내용
10. 법률, 행정 법규와 국가 규정의 금지 조항에 해당하는 내용

마블도 꼼짝 못 하는 중국의 영화 검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시리즈는 개봉하는 족족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연이어 개봉이 불발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후 개봉한 마블 영화들은 엄격한 검열로 인해 중국 내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

2021년 개봉한 <이터널스>의 경우,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2013년 클로이 자오 감독은 '필름 페이커'라는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중국을 "거짓이 판치는 나라"라고 표현하며 공산당을 비방하는 인터뷰를 했고, 이 인터뷰 이후 중국 당국은 클로이 자오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관련 보도를 전면 금지했다. 클로이 자오가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안 여성 최초로 <노매드랜드>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을 때, 중국이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를 취소하고, <노매드랜드>의 중국 개봉을 금지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터널스> 역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향으로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례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영화에서 처음으로 중국계 히어로를 다뤄 중화권에서 큰 흥행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지만, 주인공 양조위의 출연이 논란이 되었다. 양조위는 과거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내비쳐 그 역시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바 있다. <샹치> 역시 이러한 영향으로 중국 영화관에서 볼 수 없었다.

2022년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국 내 개봉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2>의 초반 장면에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국제 다국어 신문사이자 언론사 ‘에폭 타임스’의 한자가 적힌 신문 키오스크가 잠깐 등장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국 내 개봉이 불발됐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출처: AP 뉴시스)

엄격하게 금지하는 ‘동성애’

중국이 반정부 사상과 더불어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내용은 바로 ‘동성애’와 관련된 소재이다. 현재 중국은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온라인 게임, 소설, 만화 등의 문화 콘텐츠에서 형제애 묘사를 포함해 ‘보이즈 러브’, ‘여성스러운 남성’ 등의 내용을 단호하게 금지하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해리포터>의 프리퀄 시리즈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검열을 통해 일부 내용이 삭제된 채로 개봉되었다. 등장인물의 동성애 관계를 묘사한 장면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중국 당국의 요청으로 6초가량의 대사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삭제된 대사는 호그와트 교수 덤블도어(주드 로)와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매즈 미켈슨)가 과거 연인 사이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극 중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와 “여름의 겔러트와 나는 사랑에 빠졌다”라는 대사가 편집되었다.

검열로 인해 동성애 묘사 장면이 수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남성과 입을 맞추는 장면을 포함해 무려 35분가량의 장면이 대량으로 삭제되었다. 특히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비디오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핵심 장면인데, 통째로 삭제되어 중국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핸디캡을 받기도 했다.

한국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는 극장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처럼 동성애 소재가 포함된 영화는 검열을 통해 상영이 취소되거나, 내용이 수정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4월 개봉한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중국 개봉판 포스터 (출처: 豆瓣电影)

자국 중심의 검열 기준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를 침해하거나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손상했다고 판단되는 내용들이 검열을 통해 규제되는 것은 중국의 정치사상과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검열 기준으로 개봉이 금지된 영화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곰돌이 푸>는 중국 내에서 절대 개봉할 수 없는 영화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캐릭터 곰돌이 푸가 국가 주석 시진핑의 닮은 꼴로 유명해 풍자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중국은 완전히 죽지 않은 존재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좀비, 뱀파이어, 강시, 늑대 인간, 미라, 귀신 등 불멸의 존재가 사이비 종교나 미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러한 규정으로 한국의 많은 영화들이 제재받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개봉해 좀비 영화 열풍을 일으킨 <부산행>은 ‘좀비’가 영화의 핵심 소재로 등장하여 개봉이 금지되었으며, ‘쌍 천만’을 달성하며 대히트를 기록한 <신과 함께> 시리즈 역시 사후 세계와 귀신에 관련된 내용으로 중국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들을 뚜렷한 이유 없이 규제해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 <1987>, <택시운전사> 등은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과 계엄군에게 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천안문 사태’를 연상시키고, ‘민주화’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 개봉이 금지됨과 더불어, 중국의 인터넷에서 검색이 제한되기도 했다.
 
중국의 영화 검열 제도를 표현한 이미지(출처: 百度)

중국이 해외 영화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검열을 강행해 많은 영화가 제한받고 있지만, 영화 관계자들이 중국 내 개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중국의 막대한 박스오피스 규모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의 티켓 판매 규모는 약 472억 5,800만 위안 (한화 8조 9,000억 원)으로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개봉이 확정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중국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원작의 장면을 수정하거나 후편집을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업계의 노력에도, 중국의 검열 기준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많은 영화가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어 영화의 예술성을 해치고 관객들의 시청 자유를 침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중국 관객들이 공식적인 루트로 영화를 감상할 수 없기에, 불법적인 루트를 이용해 몰래 시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저작권 문제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영화 검열 규정에 반드시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학생기자 정해인(저장대 광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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