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상하이 154]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2022-08-12, 19:40:26] 상하이저널
고미숙 | 북드라망 | 2021년 9월
고미숙 | 북드라망 | 2021년 9월
이 책은 고미숙 작가가 연암 박지원을 연구하고 쓴 재밌고 쉬운 책이다. 백수뿐 아니라 현대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으면 약이 되는 귀한 책이라 자부한다. 고미숙 작가를 알게 된 이후 그분의 모든 책을 찾아 읽고 유튜브 강의도 빠짐없이 들었다. 지금 서울에 살았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부로 모시고 싶을 정도로 나는 고미숙 작가 팬이 되었다.

작년 4월 나는 16년 직장생활의 사슬을 끊고 뒤도 보지 않고 퇴사를 감행했다. 번아웃 상태였던 난 그때 마침 읽기 시작한 이 책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인식의 전환을 경험했다. 노동에서 활동으로, 노마디즘, 생태주의, 순환과 소통이라는 삶의 키워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기 나에게 큰 감명을 준 몇 가지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생명력의 핵심은 소통과 순환이다. 내가 벌고 쓰는 화폐가 그 원칙에 조응하는가 아닌가를 본격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소비는 과도한 발산으로 생명에 해롭다. 투기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돈을 따는 순간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 일종의 약탈이다.

-노마드가 되려면 가벼워야 한다. 가벼운 자만이 떠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소유를 중심으로 인생을 기획하는 일을 멈추면 된다.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하고 증식을 위한 투자를 하고 노후를 위한 보험을 들고… 이런 따위의 일만 안 해도 인생은 충분히 가볍다.

퇴사 후 8개월이 흘렀다. 반 토막 난 가계 수입과 길어진 백수 생활로 인해 조바심이 들었다. 산업 노예의 잔상이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 이력서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치 강력하게 밀어내는 척력이라도 작용하듯 회사가 나를 뽑을까봐 두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백수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타임 리치의 생활을 즐기며 매주 2-3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생각도 정리하며 충전의 시간을 가졌지만 지혜가 쌓이진 못한 것 같다. 다독 덕분에 자의식과 싸우느라 맘고생도 더러 했다. 

최근 나는 큰맘 먹고 퇴사했으나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가고 말았다. 절차탁마하는 백수의 삶은 아직 나의 내공으로는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백수는 2년 차가 최고라던데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40년 인생 전반전을 산업혁명 전선의 투사처럼 경쟁하고 성취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살았다면, 이제 불혹을 넘은 인생 후반전은 다르게 살고 싶다. 인생의 현자들이 말씀하신 자유와 해방에 집중해볼 생각이다. 

타자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함으로써,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꾀함으로써,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으로써. 그러기 위해서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으면 된단다. 모든 가치와 표상을 사람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시대가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최인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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