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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신경숙, 은희경, 박찬일, 이적,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박칼린, 장기하 | 달 | 2012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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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다정한 사람과 여행을 했다. 그것도 세계 여행을. 요즘 시국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어와 거실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결에 가을을 느끼며, 열 명의 필자들이 엮은 여행기를 한 줄 한 줄 아껴가며 읽다 보면 어느새 남태평양 한 섬의 백사장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녕 다정한 사람>은 은희경, 이병률, 박찬일, 장기하, 이 적 등 소설가, 시인, 뮤지션, 셰프 등의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곳을 여행하고 와서 쓴 여행 에세이 집이다. 시인 이병률이 사진작가로 모든 여행을 동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의 문장 못지않게 그의 사진도 매력적이라는 것은 이미 소문이 났다. 그의 눈길이 머물렀을 찐득한 감성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팬심이 자꾸 부풀어 올랐다.
은희경 작가가 와인 애호가인 줄 몰랐다. 은 작가에게 와인은 애인이고, 그녀는 그 애인을 만나러 호주 와이너리 투어를 떠났다. 부러움에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어느 나라든 와인 양조장부터 달려 가봐야겠다며 생각했는데, 이병률 시인이 다녀온 에스토니아 탈린이란 곳을 알고 나니 탈린이 1순위가 되었다. 감성 낭만 부자 이병률 시인답게 선택한 여행지도 꼭 ‘그’ 같았다.
박칼린 음악감독의 흥 넘치는 뉴 칼레도니아 여행기를 읽는 내내 나 역시 그곳에 푹 빠져있었다. 글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신비스럽고 매력 넘치는 무인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허벅지만 한 랍스터를 숯불에 구워 먹고, 60세가 넘은 원주민 선장 아저씨의 탄탄하고 검게 그을린 등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소설가 백영옥이 다녀온 홍콩은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그 익숙함이 행여 지루하려나 싶었는데, 홍콩에 대한 같은 기억과 추억을 내내 발견하면서 취향 같은 동갑내기 친구와 수다 떠는 느낌이었다. 몇 가지 딤섬들을 시켜놓고, 진한 밀크티도 한 잔씩 마시면서.
박찬일 셰프의 일본 규슈 에키벤(기차역 도시락) 여행기는 참 곤혹스러웠다. 내내 침이 고이고, 이른 아침 공복이 더 허해졌다. 사진 속 색색들이 고운 저 도시락 하나 내 앞에 있다면. 셰프는 요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소개도 맛깔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뮤지션답게 장기하는 영국의 런던과 리버풀을, 이적은 캐나다 퀘벡의 재즈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장기하는 영국 에일 맥주에 더 심취했던 것 같지만. 자유로운 영혼들의 흥 폭발 여행기는 독자들에게도 신나는 비트를 타게 해 준다. 한 문장 문장마다 ‘나 작가요~’ 하는 묵직하고 난해한 글들보다 이런 감성과 분위기에 충실한 글들이 더 끌렸다. 시종일관 진지모드 여행 메이트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내게도 여행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내게 여행은 본능, 일탈의 본능, 수렵채집 사피엔스의 떠돌이 본능. 그 본능에 충실해지고 싶지만 아직은 먼 여행을 떠나기엔 제약이 많다. 이제나저제나 자유로울 그날을 상상하며.
김경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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