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나의 단골집을 소개합니다

[2022-10-29, 06:45:54] 상하이저널
단골집이 있다. 십 년 하고도 한두 해 더 되었으려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이유없이 헛헛할 때도, 그저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생각날 때도 나의 발걸음은 단골집으로 향한다. 집과의 거리도 5분, 딱 좋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상하이를 방문할 때도 가봐야 할 리스트에도 꼭 넣는 곳이다. 지인들은 의아해한다. 왜 상하이에서 여기를 가냐고. 이곳은 일본식 술집이다. 닭고기나 내장을 한입 크기로 잘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꼬치구이가 일품인 곳이다. 평소 일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백컨대, 다른 나라 여행은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아직 일본 여행은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주저하다가 늘 마지막에 포기하게 되는 가깝고도 먼 나라. 그런데 취향 저격 맛집 앞에서는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섰다. 한국 방문에서도 지인들의 소개로 비슷한 꼬치구이 집을 몇 군데 가 보았지만, 이곳처럼 맛있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과의 인연은 냄새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십여 년 전, 둘째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큰 아이까지 챙기며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한 식당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숯불 향이 훅 밀려왔다. 육아로 지치고 팍팍했던 나에게 그 향은 퍽 자극적이며 낭만적이었다. 그 후 이 식당 앞을 지나칠 때마다 궁금증은 점점 커졌다. 저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연기와 숯불 향의 정체가 무엇일지. 당시 나의 육아 동지들이 동참해주었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이곳에서 숯불 향이 제대로 살아있는 닭꼬치 구이와 생맥주를 앞에 두고 너무나도 즐거웠다. 심지어 이곳엔 작은 방도 있었다. 우리는 과감해졌다. 한가한 저녁이면 어린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그 방을 점령했다. 종종 방 안 옆자리에는 역시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일본 엄마들이 있었다. 무료하고 지친 저녁 시간, 꽤 괜찮고 안전한 일탈이었다.


애주가에게 맛있는 생맥주와 현지 맛집 버금갈 것 같은 안주, 적당하게 아담한 실내와 역시나 적당하게 어두운 조명이 갖춰져 있다면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단골이 되어가면서 이곳은 나의 상하이 생활 희로애락 모든 버전 스토리를 담고 있는 곳이 되었다.

술 안 마시는 남편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곳은 늘 환영받는 장소이다. 한가한 저녁에 “꼬치집 갈까?” 하면 방에 있던 아이들이 겉옷만 걸치고 후다닥 나온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주문한 꼬치들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성적, 진로, 친구와의 고민 등을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퇴근 후 혼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 여성이 혼술 하고 있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아직까지 밖에서의 혼술에는 도전을 못해보았지만, 그날이 온다면 이곳에서 시작을 해보리라 생각을 했다.

애석하게도 이제는 나의 단골집은 더이상 나만의 단골집이 아니다. 인근에 살고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서양 외국인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소문이 났다. 늘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몇 년전부터는 며칠 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이른 저녁이나, 늦은 밤이나 되어야 한 두 자리 나는 곳이 되었다. 한참 북적일 시간에 혹시나 하고 몇 번을 가봤지만, 바로 되돌아와야 했다. 나의 완소 베프가 유명인이 되어 전처럼 자주 편하게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하지만, 아쉬운 건 나이니. 집과의 5분 거리 단골집의 장점을 활용한다. 전화번호를 남겨 놓고 집에 오면, 한시간 정도 뒤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온다. 다시 후다닥. 그날 밤도 상하이 생활 희노애락의 한 편린을 단골집에 살포시 쌓아 놓는 시간이 된다.      

레몬 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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