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대장 중국에 이견 없다

[2023-04-25, 16:02:41] 상하이저널

중국을 대표하는 구기종목을 꼽으라면 농구와 탁구가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인의 탁구에 대한 사랑은 대단한데 우스갯소리로 중국에는 대한민국의 인구 수만큼의 탁구선수가 중국에 있다고 할 정도다. 중국의 탁구 실력은 세계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방한 성적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1988년에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로 채택된 탁구는 현재까지 총 8번의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다. 총 33개의 올림픽 금메달 중에서 중국이 차지한 금메달 수는 무려 28개에 달하고, 중국 다음으로는 한국이 3개 스웨덴과 일본이 하나씩 차지했다. 탁구의 금메달 중 90% 정도가 중국에 가 있는 셈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탁구선수 용국단(荣国团)

중국은 1952년에 처음으로 탁구를 도입했고 중국 전역으로 점차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泽东)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운동들을 시도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운동은 바로 1958년에 있었던 대약진(大跃进) 운동이다. 대약진 운동은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준비한 경제성장 계획이었다. 그러나 홍수와 가뭄, 대기근과 같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마오쩌둥이 잠시 사퇴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때 국민을 하나로 모아준 인물이 바로 탁구선수 용국단 (荣国团)이다. 
   
[사진= 용국단(출처: 바이두)]  

[사진= 용국단(출처: 바이두)]  

용국단은 홍콩 출신의 탁구 선수인데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그는 서양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기 시작했다. 탁구선수로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중국 국가체육위원회의 눈에 띄어 중국 국가대표로 탁구선수의 활약을 시작하고, 1959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첫 단식 우승을 차지한다. 

중국 국민들이 가장 힘든 시기에 큰 위로가 되어준 그는 단숨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마오쩌둥은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준 용국단을 초청해 천안문광장에서 축하 퍼레이드를 열고, 중국 내에서의 탁구 인프라 확장에 신경 쓰는 등 국민들의 불만을 탁구로 해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탁구에서도 암흑기가 찾아왔는데 바로 1966년에 있었던 문화 대혁명이었다. 이 당시 모든 스포츠는 오락으로 여겨지며 배척당했고 운동선수들은 외국풍에 물든다는 이유로 올림픽에 참전하지 않는 등 모든 해외대회 참가를 거부했다. 용국단은 특히 서양 문화에서 자라 서양 문화를 즐겼기 때문에 큰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그는 1968년 3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세계 최강 중국의 탁구 사랑

중국은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제31회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과의 이른바 ’핑퐁외교’를 시작으로 탁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이러한 중국의 꾸준한 지원으로 국민들 역시 탁구에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류궈량 선수가 웨이보(微博)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마추어 체육 학교에서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탁구를 배우며 즐기고 있다. 또한 중국 내 탁구협회에 등록된 탁구선수의 수만 하더라도 무려 3,000만 명이 넘어가는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탁구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중국에서는 3,000만 명이 넘는 선수 중에서도 국가대표(国家队)1군,2군, 각 성의 대표(省队) 등등 다양한 선수층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케이스를 상대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독자적인 용구와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탁구 라켓 몸체 중간에 들어가는 고무를 ‘러버’ 라고 하는데 중국 선수들은 약간의 점착성이 가미된 ‘점착러버’를 사용한다. 이러한 용구를 사용하다 보니 템포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빠른 템포로 공을 치는 것이 중국 탁구의 특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중국 내의 탁구슈퍼리그 (CTTSL, 中国乒乓球俱乐部超级联赛)역시 중국 탁구 발전에 빠질 수 없다. 탁구 슈퍼리그는 세계적으로도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일반 선수들의 연봉은 3~5억, 주전 선수들의 연봉은 10~15억을 상회한다고 한다. 여느 프로들과 비교해 봐도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의 임금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많은 중국사람들은 탁구 선수를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이야기한다.  2021년 7월 기준으로 ITTF 랭킹에서 중국 선수가 남자는 랭킹 10위 내에 5명 여자는 7명 분을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2023년인 현재까지도 중국의 탁구는 단연 세계 최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 점착 러버를 사용하는 세계 랭킹 1위 팬젠동(樊振东) (출처:바이두)]

중국 탁구의 레전드 선수들

긴 시간 동안 중국 선수들이 탁구계를 지배했지만, 국내선수만 3,000만 명이 넘는 경쟁을 뚫고 그랜드슬램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단식 우승)을 달성한 사람은 총 9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전설적인 탁구선수 덩야핑(邓亚萍)이 있다. 그녀는 중국의 탁구 마녀라고도 불리며 우승만 무려 132번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녀 역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9명 중 한 사람이며 여자 탁구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또한 2회 연속 올림픽 단식 금메달에 성공한 단 두 명 중 첫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또다른 한 명 장이닝(张怡宁)은 세계 최다 그랜드 슬램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테나 2004와 베이징 2008 여자 단식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탁구 역사상 유일하게 그랜드 슬램을 2차례나 달성한 선수다. 2개의 올림픽 금메달 외에도 월드컵 4회 세계선수권 우승 2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자 선수 중에서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류궈량(刘国梁) 선수다. 현재는 중국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시작으로 같은 해 월드컵 정상에 올랐으며 1999년 세계 선수권 우승으로 그랜드 슬램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2012년 금메달리스트 장지커(张继科)는 단 445일 사이에 (2011~2012년) 올림픽, 월드컵,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단기간 그랜드슬램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 장이닝(출처: 바이두)]

[사진= 류궈량(출처: 바이두)]

[사진= 장지켜(출처: 바이두)]

중국은 중국 마카오에서 열린 이번 WTT(Word Table Tennis Champions) 대회에서도 자신들의 강함을 또다시 증명했다. 4월 18일에 갱신된 세계 탁구선수 랭킹을 확인해 보면, 남자 단식 부문에서 1등은 팬 젠동 선수가 차지하고 있고 1부터 5등까지 선수들 중 4명의 선수가 중국 선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 단식 부문에서는 1등부터 6등까지 모든 선수가 중국 선수가 자리매김하면서 모든 부문에서의 1등과 상위권을 독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4월 23일에 있을 WTT결승전과 더불어 2024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올림픽 때 세계 최강의 중국이 과연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학생기자 유형규(저장대 공상관리학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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