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상하이 208]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2023-09-11, 17:56:51] 상하이저널
우종영 | 메이븐 | 2022년 1월
우종영 | 메이븐 | 2022년 1월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녹색이 주는 청량함과 푸르름 속에 파묻혀 빈둥대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동생이 있는 양평에 가서 텃밭을 가꾸며 살 것이라는 막연한 노후 계획도 있지만 키우는 초록이마다 족족 죽이는 ‘식물 킬러’이기도 하다. 이런 나와 정반대인 ‘나무 의사’라는 직업도 생소했고, 요즘 서점가에서 보기 힘든 담백한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30년간 아픈 나무들을 돌봐 온 나무 의사 우종영 씨가 나무에게 배운 삶의 지혜에 관해 쓴 책이다. 그의 소망은 밥줄이 끊어질지라도 더 이상 나무가 아프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들린 조계지는 우거진 플라타너스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문득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나 나무를 살펴보니 뿌리가 보도블럭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얼마나 비좁았으면, 그래도 생명을 유지하겠다고 흙 속에 있어야 할 뿌리를 드러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나무에게 미안했다. 이제는 공원이나 교외로 나가야 만나는 나무에게 우리는 참으로 무심했단 생각이 들었다. 삼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 흰 쌀밥 같은 이팝나무, 거센 바람 맞으며 푸르름을 간직하는 소나무, 5리마다 한 그루 씩은 볼 수 있다는 오리나무, 하얀 수피를 벗겨 그 위에 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자작나무, 한겨울 설경 위 다섯 장 꽃잎으로 단장한 동백나무, 한번 뿌리를 내리면 질기게 살아남는 조팝나무, 그리고 엄마 품처럼 넉넉한 느티나무 등 세상에는 수많은 나무가 있고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등나무가 좋다. 우리 동네 놀이터의 등나무도 언제나 그늘을 제공하며 우리 아이들이 놀며 흘린 땀을 닦고 쉬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덩굴식물인 등나무는 혼자 힘으로는 줄기를 뻗지 못해 두 줄기가 서로 의지하며 자란다고 한다. 이렇듯 한 공간에서 두 존재가 평생 함께한다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그 꼬아진 모습을 보면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조화롭다.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세상인 것을 알기에 등나무를 볼 때마다 서로의 약한 부분을 이끌어 주는 우리네 같아 좋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내가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모두 배웠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새삼 나무가 한평생 한 자리만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무라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까? 나무는 말한다. 

남과 비교하여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의 삶 하나만을 두고 거기에만 충실하라고. 그리고 그로 인해 생의 의미를 얻고 삶을 영위할 힘을 받으라고. 나무에게 땅에 묶여 평생을 사는 것이 숙명이라면, 뿌리를 내린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은 운명이다. 나무가 땅속 습도에 따라 뿌리의 두께를 달리하듯 나도 내 운명을 개간하고 응원하며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나무가 결코 자기 삶에 느슨한 법이 없듯이 말이다. 이제 새로이 보이는 나무와 친구 하며 그 넉넉함에 기대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 무엇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박영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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