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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달 | 2010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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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S
아이 돌잔치를 하러 한국에 들어갔던 2010년 설날 즈음, 길을 걷다 책방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나. 육아에 지친 초보 엄마는 언젠가 이렇게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 내려갈 상상을 하며 이 책을 집었을 것이다.
내 손에 끌림을 받은 책은 라디오 이소라의 음악 도시 작가로 유명한 이병률 시인이 1994년~2005년 20개국 500개 도시를 여행하며 써 내려간 Travel Note이다. 발길 닿는 여행지 속에서 보이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 싱그럽고 간결한 문체로 사람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 길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또 힘들어했다.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길 다 사랑은 사랑이었는데, 두길 다 내 길이었는데, 왜 그걸 두고 다른 한쪽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 그러게나 말이다.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간 따스한 햇빛도 만나고 결국엔 시원한 그늘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진리인 것을 그땐 몰랐을까?
# 사랑해라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몇 년이 흘렀다. 결국은 내 마음의 구멍이 뚫려 춥디추운 칼바람과 나와의 싸움이 된다.
# something more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 건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씩 쓰러뜨려서라도 그걸 갖고 만지겠다는 건지를,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something more…… 이 세상에 있겠지만 이 세상엔 없을 수도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유로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단 말인가. 열정이었다 변명하고 싶었던 욕심과 이별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화로운 미소 지으며 행복하리라.
#뭔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
소중한 누군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곳에 남아 있다면 언제든 다시 그곳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람이기 때문에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마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 두고 온 그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꽉 찬 가슴을 움켜쥐고 얼마나 울었던가? 끝을 마주하고 곧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나를 들뜨게 한다.
떠나든 떠나지 않든 가슴이 후련해지는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3여년의 철통같던 격리도 풀린 지 1년이 흘렀다. 빼앗겨 보지 않고서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설렘 가득한 자유, 희망이라는 두 글자. 이제는 어떠한 끌림으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날이 왔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는 그런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곽진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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