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상하이 216] 이병률 산문집 <끌림>

[2023-11-11, 08:16:03] 상하이저널
이병률 | 달 | 2010년 7월
이병률 | 달 | 2010년 7월
TRAVEL NOTES

아이 돌잔치를 하러 한국에 들어갔던 2010년 설날 즈음, 길을 걷다 책방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나. 육아에 지친 초보 엄마는 언젠가 이렇게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 내려갈 상상을 하며 이 책을 집었을 것이다.

내 손에 끌림을 받은 책은 라디오 이소라의 음악 도시 작가로 유명한 이병률 시인이 1994년~2005년 20개국 500개 도시를 여행하며 써 내려간 Travel Note이다. 발길 닿는 여행지 속에서 보이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 싱그럽고 간결한 문체로 사람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 길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또 힘들어했다.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길 다 사랑은 사랑이었는데, 두길 다 내 길이었는데, 왜 그걸 두고 다른 한쪽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 그러게나 말이다.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간 따스한 햇빛도 만나고 결국엔 시원한 그늘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진리인 것을 그땐 몰랐을까?

# 사랑해라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몇 년이 흘렀다. 결국은 내 마음의 구멍이 뚫려 춥디추운 칼바람과 나와의 싸움이 된다. 

# something more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 건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씩 쓰러뜨려서라도 그걸 갖고 만지겠다는 건지를,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something more…… 이 세상에 있겠지만 이 세상엔 없을 수도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유로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단 말인가. 열정이었다 변명하고 싶었던 욕심과 이별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화로운 미소 지으며 행복하리라.
 
#뭔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

소중한 누군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곳에 남아 있다면 언제든 다시 그곳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람이기 때문에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마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 두고 온 그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꽉 찬 가슴을 움켜쥐고 얼마나 울었던가?  끝을 마주하고 곧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나를 들뜨게 한다.

떠나든 떠나지 않든 가슴이 후련해지는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3여년의 철통같던 격리도 풀린 지 1년이 흘렀다. 빼앗겨 보지 않고서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설렘 가득한 자유, 희망이라는 두 글자. 이제는 어떠한 끌림으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날이 왔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는 그런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곽진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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