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상하이 219] 생에 감사해

[2023-12-09, 06:09:36] 상하이저널
김혜자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김혜자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꽂힌 책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썼다니 궁금해서 득달같이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 편에 받아본 책 <생에 감사해>. 김혜자 씨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심금을 울리는 휴먼이나 로맨스류를 좋아하는 내가 극 속에서 나를 완전 이입시키는 배우 중 최고로 꼽는 이다.

이 책을 읽는 여정은 신비 가득한 그녀의 모든 것이 해소되고 경이로워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천재적 연기력은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단한 연습과 초집중력으로 얻어진 결과였다. 끊임없는 독서와 영화감상, 공상을 통한 풍부한 감성과 공감 능력은 남다른 노력 속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온갖 소리를 뽑아내어 울부짖다가 픽 쓰러지는 수탉. 연기에 죽을 만큼 혼신의 힘으로 다하는 자신을 이렇게 비유하며 이것이 자신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거의 해체되어 널브러질 정도로 힘이 빠져 지내다가 다시 작품을 만나서 살아간다니 가히 경이로운 열정이다.

자신의 약점이 최고 연기자의 동기가 되었다는 고백도 내겐 큰 시사점으로 다가왔다.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잘하지 못하니까 연기만큼은 최고로 잘하려 했던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그랬다.

또한, 남들과 어울리는 걸 못 하지만 오히려 그걸 즐길 줄 알고 그런 시간들이 자신에 대한 집중력으로 성장하고 재능을 키우게 된 것도 그렇다.

이 책의 묘미는 읽는 동안 내내 명작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김혜자 씨가 감명 깊게 보았던 불후의 영화들, 출연하여 대부분 열풍을 일으켰던 본인의 출연작품들.  작품마다 친절히 두어 줄의 작품소개도 되어 있어 독자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배려도 느껴진다. 역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그 다웠다. 그녀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믿고 볼만할 것이기에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본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출연했던 작품들에 관해서 서술한 대목에서는 자신의 고백이 작품감상의 깊이를 더 키워주었다. 작품의 가치도 한층 더 빛나게 해주어 보지 않은 작품에도 큰 감동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고 내가 꼭 보고 싶어진 작품을 꼽자면 모노드라마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1명의 연기를 혼자 다 해내면서 김혜자는 또 어떤 기적을 일으켰을지, 뻔히 놀라움의 연속일 텐데 도대체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는 기대가 가득해졌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만난 동료 연예인 중 뛰어난 연기력과 자세에 감동하여 극찬도 이어진다. 워낙 탄탄한 그가 감탄스럽다는 배우들에 대해서는 더 검증도 필요 없이 그대로 믿음이 가게 되는 힘도 느껴진다.

외부 충격에 약할 것 같은 김혜자인데, 작품출연과 관련하여 본인에 대해 게재되는 댓글들을 거의 다 본다고 한다. 악플에도 깨닫고 얻을 것이 많다고 하는 걸 보면 분명 연약한 여인의 내공은 아니다. 연기를 위해서라면 아프고 쓴 상황마저도 즐겨 대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책에 인용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글인데, 가장 김혜자스런 메시지라 생각한다.

꽃을 보고 온 마음 다해 대화해도 세상 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을 이 김혜자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김영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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