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in 상하이] 그곳

[2024-03-18, 16:43:27] 상하이저널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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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미용실이 있다. 단골이라고 해봐야 귀차니즘이 심한 사람으로 일 년에 겨우 두세 번 이용하는 정도니 나 같은 단골이 많다면 이런 가게는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렇게 무심한 단골도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고 요구사항을 일일이 말할 필요 없이 알아서 깔끔하게 머리 손질을 해주는 원장님이 상주하고 계신다. 요즘 말로 손님 취향 제대로 저격할 줄 아는 원장님은 본인 할 얘기도 한 글자 빠트리는 법이 없이 소탈하고 시원하다. 이 미용실은 내가 이곳 상하이에 온 지 이십 년 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아마 대부분 단골은 나보다는 훨씬 아름다움에 민감한 분들일 것이고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몇 년에 한 번이나 간혹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가게 상호나 주인이 바뀌는 상해의 이 코리안타운을 오갈 때마다 눈으로 더듬게 되는. 여전히 처음 간판 그대로인 이 미용실은 그렇게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고 가끔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소망까지도 되새기게 만들었다.

많은 아는 이들이 떠나가고 모르는 새사람이 들어오는 이곳 상하이는 말 그대로 밀물, 썰물 따라 출렁이는 부두이고 바다 그 자체이다. 이곳에서 아직도 한참 더 머물러 있어야 나도 그 썰물이 될 것이다.

밀물은 급격하게 줄고 썰물이 훨씬 많으니 십 년 전에는 주차가 힘들어 주말에는 진입할 엄두도 못 내던 그 떠들썩한 코리아타운도 과거의 위용에 비해서 무시로 적막감이 감돈다. 중국인들에게 한국 문화 체험 핫플레이스로 인식되는 이곳 상권이 그럴진대 다른 곳은 더 말해 무엇하랴. 

10여 년 전에 사업 시작한 친구들이 자신만만해하여 세상을 겁 없이 덤빌 때 그때 우리가 마주하던 세상은 능력과 오기만 있으면 뭐든지 다 실현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찬 세상이었다. 호기롭던 그 친구들은 지금 내 옆에 없다. 식사라도 같이 하며 옛날 마음을 그렇게 써주던 친구한테 내 마음도 좀 전하고 싶은데 과거 승승장구하던 사업가에서 현재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는 친구는 나를 만나 주지 않는다. 

그때는 늦게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결혼식에 자주 초대받았고 술 한잔 못하면서도 그 분위기에 취해 밤샘 피로연도 즐기고 했다. 이런 파티가 영원할 거만 같았는데 이젠 동창 부모님들의 부고만 자꾸 들린다.

지난 겨울방학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딸이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밝고 따뜻한 정서를 지닌 그 청년을 대하는 순간 세월이 한줄기 바람처럼 쏴아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아득했고 오묘했고 경이로웠다. 인생에는 언뜻 슬픈 듯, 그러나 분명 희열에 넘친 이런 신비한 기분도 있었다……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어가는 동시에 뜻하지 않게 새로운 아름다운 것들도 간간이 위로의 선물처럼 받아 보는 여정인가 보다. 
시간이 흘러간 것인지 우리가 흘러간 것인지는 좌표를 어디로 정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론일 뿐, 어쩌면 우리는 그 숙명적인 삶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이 100년 전 인간의 고민의 깊이보다 더한 것이고 전혀 다른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더욱더 소란스럽고 위태로워진 세상을 대하며 우리가 한때 가졌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 가치들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땐 포용을 알았고 협동을 알았고 연대를 알았다. 이타(利他)의 결과가 결국 이기(利己)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분명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따뜻한 커피같이 은은한 미용실이 보일 듯 말 듯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소이(mschina0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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