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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뜻 밖의 사과

[2020-03-14, 15:51:04] 상하이저널

코로나19를 피하려고 갑자기 한국행을 결정했다. 동네에서 꼭 필요한 일에만 외출을 했는데, 길거리도 한산하고 버스도 텅텅 비어있었다.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 승차한 승객이 기침했는데, 기침 한 번에 감염이 될 듯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며칠 동안 감염자 수는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늘고, 폐쇄되는 도시도 늘어 영화로 보던 공포가 현실이 된 듯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새벽녘에 오후 비행기표와 열흘 정도 묵을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공기도 상쾌해진 것 같은 안전감이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우리 가족이 상하이에서 온 것을 주변에서 알까 봐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꼭 필요한 옷가지 몇 벌씩과 필요한 책들만 챙겨서 나오느라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시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식구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엄마는 들어오길 잘했다면서 같이 지내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셨다. 그런 중에도 잠복기가 14일인데, 숙소를 열흘만 예약한 것에 걱정하시는 듯했다. 다른 곳으로 옮길지 그때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역시 현실주의자이신 엄마다웠다. 

숙소는 딱 네 식구 발 뻗고 누워 잘 만한 크기의 행복이었다. 큰아이 어학원에서도 수업을 온라인으로 변경했기에, 수업할 동안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피해있었다. 밖은 동묘 구제시장 한복판이었는데, 추억을 소환시키는 레트로 음악이 울려 퍼져 추억이 소환되는 가운데 진열된 점퍼, 운동화, LP판, 전축 등을 구경하며 주일이라 몰린 인파 속을 밀려다녔다. 어르신 중에는 신종 전염병을 의식하지 않고 마스크 없이 기침하거나 침을 뱉는 사람들이 많았다. 

열흘을 현지 상황에 촉각을 세우며 지켜보고 있자니, 마침 아버지 생신이라 식사에 합류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좁은 방에서 나와 혹시나 모를 걱정을 하면서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반가운 식구들과 진수성찬을 만끽한 후, 행여나 ‘친정집 이웃들이 상하이에서 온 우리를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조심조심 지낸 귀국 14일째 아침, 큰아이가 목이 아프다며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나는 이제껏 긴장하고 걱정한 일들이 벌어진 듯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것에 불같이 화를 냈다. 엄마는 걱정도 하지 말라시며, 아이에게 약과 따뜻한 차를 먹이셨다. 

아이가 다시 잠들자 엄마는 내가 화내고, 야단치는 모습이 예전에 당신의 모습과 똑같아서 놀라셨다고 했다. 그때는 엄마가 잘못했으니 안 좋은 모습은 엄마에서 끝내고, 너는 부디 아이들을 좋은 말로만 키우라고 하셨다. 후회하시는 엄마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 속 응어리들이 맥없이 녹아 내렸다. 어렸을 적 나는 귀가가 늦어지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지금은 부쩍 야위신 엄마가 해외에 사는 나를 늘 보고 싶어 하신다. 어쩌면 호기롭게 배낭을 짊어지고 어디든 떠났던 당신의 모습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춘천을 감싸 안은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덧없음이 온몸으로 파고 들었다. 

여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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