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에 가본 연변은, 공항도 참 작고 사람들도 순박하고, 우리나라 60, 70년대를 연상시키는 골목의 모습, 부지런한 사람들의 이미지였다. 연길공항에 도착하니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듯 그 곳에는 완전히 다른 도시 공항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서백두를 향해 출발! 연길에서 안도, 안도에서 이도백하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그 다음에 이도백하에서 송강하까지 기차를 탔다. 송강하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다음 날 백두산은 아마 하늘이 싹 개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계속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방콕하면서 하늘 보다가 오후에는 분명히 갤 것 같다는 일기예보와 태왕님(가이드)의 경험으로, 비는 오지만 먼저 장백현을 향해 차를 돌렸다. 가는 길 모두가 숲길로 오랜만에 초록을 실컷 보았다. 마치 한국의 산속을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장백현 국경 접경 지역에서는 계속 통행료를 받고, 이렇게 가깝게 북한이 보이다니 정말 실감이 났다. 강가에 나와 빨래하는 아낙들, 노는 아이들, 보초서고 있는 군인들, 작업중인 사람들, 살고 있는 집 모양, 선전 문구 …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무언가 뭉클하고 깊은 감회에 젖게 하는 지역이었다. 좀 늦은 오후에 남백두 산문에 도착하니 마침내 비가 그쳤다.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반반. 올라가는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차가 계속 산을 오르니 안개가 가렸다가, 열렸다가 비가 오다가, 말다가 그야말로 기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상에 도착. 태왕님이 먼저 내려서 천지를 향해 뛴다.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전부 뛰어서 천지에 도착. 언제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맑고 고요한 천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지의 물 색깔은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쪽빛색. 우리 모두가 감동과 멋진 경치, 아니 웅장하면서 아기자기한 천지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있었다. 날씨 탓으로 올라온 손님도 없어서 이 성수기에 우리 일행만이 이런 장관을 누릴 수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행운인가 싶은데 중국인 가이드가 물결을 가르며 움직이는 한 점을 가르친다. 기사와 가이드의 주장이 천지 괴물이라는 것이다. 몇 년에 한번 나타나는 전설의 괴물을 보았으니 얼마나 복이 있냐고 한다. 우리도 반신반의 사진을 찍으면서 배일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중국정부에서 천지에 배가 뜨는 것을 허가하지 않으므로 배일리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산 하는 길, 고지대의 초원에는 듬성듬성 야생화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제 계절에 왔다면 매우 아름다웠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가 야생화가 한창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야생화가 피는 시기에 꼭 다시 오리라 생각하면서 백두산을 뒤로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서백두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연길로 여유있게 돌아가기로 했다. 남백두에서 본 천지의 장관으로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 그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돌아갈때 똑같은 코스로 돌아가는데 낮버스를 타니 완전 동네 완행 버스다. 통로에 낚시 의자 같은 작은 의자를 놓아 10명은 더 앉힌 것 같다. 돌아가는데 거의 하루 걸려 연길에 도착. 하룻밤만 지나면 상해행이다.
맑고 고요한 천지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