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만큼 중국 땅에 남겨진 우리나라의 흔적들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를 위해 일본의 세력에 맞서 투쟁하던 독립운동가분들의 자취도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상해 거주 한국인이라면 다 한번쯤 가봤었을 상해 임시 정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홍커우 공원, 항주 임시 정부 등 많은 독립운동과 관련된 한국 유적지들이 있지만 그 중 자싱 김구 선생님이 머무셨던 피난처, 메이완가에 대해 소개한다.
메이완가(梅湾街)에는 1932년,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1년 반 가량 지냈던 피난처와 당시 김구 선생과 함께 (일제의 검거 선풍을 피해 )피신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가 있다.
먼저 메이완가의 76호 입구에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김구 피난처 왼쪽에는 기념관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피난처는 2층짜리 목조건물로, 1층은 접견실 겸 식당으로, 2층은 침실로 재현되었다. 내부를 둘러 보다 보면 2층에 김구 선생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침대와 옷장을 볼 수 있고, 2층 방 마루바닥에는 나무로 만든 비상 탈출구를 실제로 볼 수 있다. 김구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해 이곳 비상구를 통하여 1층으로 내려가 배를 이용해 호수로 피신했다고 한다. 원래는 침대 바로 빝에 비상구가 있었으나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침대의 위치를 옮겨 놓았다. 지금까지도 집 뒤편의 호숫가에는 탈출용 배가 묶여 있다. 이러한 방 구조와 그 당시에 실제로 쓰던 물건들을 재현해놓은 것을 보자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셨던 분들의 고초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기념관 입구에는 김구 선생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고, 전시관 내에는 임시정부의 활동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김구 선생과 그 외의 임시정부에 소속되어있는 독립운동가 분들의 항일투쟁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이 메이완가 피난처에서 피신 중이었던 시절, 중국인처럼 보여 남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하기 위해 주아이바오(朱爱宝)라는 한 처녀 뱃사공과 부부 행세를 하였던 적도 있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자싱까지 따라붙자, 김구 선생은 아예 배에서 피난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훗날 임시정부의 이동을 따라 난징까지 동행했던 주아이빠오를 김구는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만다. 이 일화를 한 중국인 소설가 샤녠셩(下辇生)이 소설로 발표하기도 했다.
▶자싱 김구 선생 피난처, 메이완가(梅湾街): 嘉兴市梅湾街76号
▷고등부 학생기자 김한울(YCIS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