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연합뉴스) 진병태 특파원 = 중국에서 문화혁명 당시 온갖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한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가 폐렴으로 13일 숨졌다고 중화권 언론이 보도했다. 향년 85세.
왕광메이가 남편과 함께 한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1921년 공산혁명 전의 공화정부인 중화민국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아버지와 기업가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워싱턴에 근무한 적이 있는 그의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그 나라 국명을 따라 지었다. 광메이라는 이름은 '명예로운 집안의 아름다운 소녀'라는 뜻이었다.
문화혁명 직전 중국에서 왕광메이보다 더 세련된 여성은 없었다. 해외근무와 외교분야의 업무에 종사한 명문가 출신으로 완벽한 교육을 받았고 어학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문혁을 이끈 4인방 가운데 장칭(江靑)의 질투심을 부추겼다. 장칭은 그가 외국을 순방할 때 전통복장인 치파오(旗袍)를 충고한대로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개비판했다.
왕광메이는 1946년 류샤오치와 만나 1948년 결혼했다. 그녀는 1959년 류샤오치가 주석직에 오르자 '중국의 제1부인'으로 중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문혁이 일어나자 류샤오치는 고문과 구타 등 온갖 박해를 받다가 1969년 허난성 카이펑(開封)의 낡은 지하감옥의 시멘트 바닥에서 알몸인채로 죽었다. 류의 사인은 폐렴으로 베이징에 보고됐다.
왕광메이는 베이징 교외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에야 남편의 유해를 만났다.
그녀는 4인방이 숙청된 뒤 명예를 회복,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을 지냈고 산간벽지의 가난한 부녀자를 돕는 프로그램인 '행복공정' 조직위원회 주임을 맡아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노후를 보냈다. 행복공정은 전국 빈곤지역의 농촌에 자금과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