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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상하이에서 명절나기

[2010-10-17, 00:19:09] 상하이저널
추석 연휴를 맞아 남편 누님들 내외분과 큰형님네 식구들, 사촌형님 내외분까지 상하이로 총 출동을 하셨다. 모두 함께 상하이에서 추석을 지내고 며칠 여행을 하시고 싶다는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당황스럽기만 했다. 한국에 있을 땐 늘 형님들 손에 묻혀서 힘들다 해도 내가 책임질 일은 없었고, 더구나 상하이로 온 뒤 추석 명절은 항상 가족들끼리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던 터라 그 많은 식구들이 오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앞서 달력을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오곤 했다.

그러나 사실 어른들 모시는 것보다 더 부담스러웠던 건 한번도 차려보지 않은 차례상이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집집마다 풍속이 다른 탓인지 다 다른 말을 해 머리만 복잡해지고 그만 에이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정성만은 다 하고 싶어 꼬리가 얌전히 달린 북어를 찾아 헤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이것 저것 염려했던 것과 달리 형님들이 오시니 장보기와 음식 만들기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해외에 산답시고 차례상 차리는 것 한번 돕지 못했던 터라 누구보다 큰 동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잘 준비해놓고 싶었는데 역시나 늘 손님 같이 지내온 티를 벗지 못했다. 신난 건 아이들이었다. 식구들이 북적대고 상 가득히 차려진 맛있는 음식들에 어른들이 주시는 용돈까지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추석이었을 것이다.

집안의 역사와 대소사를 꿰뚫고 계시는 사촌아주버님 덕분에 아이들이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게 된 것도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다들 이젠 예전 같지 않은 몸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하셔서 며칠 여행을 하는 동안 이 집 저 집 내외분 간에 생기는 소소한 다툼과 화해도 때론 즐거움이 되었고 서로 손잡고 걸으며 얘기하는 다정한 순간엔 왠지 가슴이 뭉클거리기도 했다.

문득 십 수년간을 한결 같은 자리에 머물러 계시는 이 분들을 남편 식구가 아니라 내 가족으로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사실은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 적당히 편안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무관심하게 지내려는 핑계가 아니었을까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신 큰 누님의 해맑은 웃음, 늘 낙천적이고 밝게 집안 분위기를 이끌어가시는 작은 누님, 한평생을 성실하게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 삶을 살아오신 사촌형님 내외분, 대한민국 장남들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오신 큰 아주버님과 그 곁에서 또한 맏며느리의 자리를 지키신 형님,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됐는데도 뒤치닥거리를 하게 해 속으로 흉을 좀 보긴 했지만 나의 또 다른 삶의 자리를 생각하게 해주는 조카들,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 모두가 한 남자와 결혼해 살아왔던 지난 모든 세월과 함께 내 안에 풍경처럼 펼쳐진다.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 가운데 항상 함께 있을 이 사람들, 추석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에 이 모두를 담으니 급류같이 휩쓸려 가는 세월 속에서 든든한 기둥을 안고 잠시 한숨을 돌리는 듯 하다.

▷구름에 실린 달팽이(geon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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