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동아시아 식민 역사⑦ 62년간 식민 지배를 받은 베트남

[2016-12-16, 18:00:10]
동아시아 식민 역사⑦

 

동남아시아 나라들 중 식민지의 시련을 겪어왔던 대표적인 국가로 베트남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은 1883년부터 1945년까지 프랑스에 지배를 당했었다. 프랑스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베트남 시민들은 계속 고통을 받았고, 독립을 선언한 뒤에도 식민지 문제로 서부 국가들과의 전쟁이 지속되어 베트남에겐 뼈아픈 상처로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 침략에 빌미를 제공해준 ‘응오옌’ 왕조
1802년, 베트남 중심주의를 중시하던 떠이 썬 왕조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응우옌 왕조에 의해 몰락했다. 새 왕조를 세운 응우옌 푹 아인(쟈 롱 데 嘉隆帝)은 왕조의 권위를 높이고 중앙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토목사업을 추진했다. 그의 넷째 아들이자 2대 황제인 응오옌 푹 담(민망데 明命帝)은 선왕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계승했다. 지방을 30성으로 재편성, 역사서 집필, 지주들의 토지들을 땅 없는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농업 개혁 등 많은 정책들을 실행했다. 그러나 민망데는 외세, 특히 서양 국가들에 대한 엄청난 반감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깊은 유교사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을 노리는 세력의 배후가 영국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적개심 때문에 그는 베트남 내 기독교를 일제히 탄압하였고, 서양인들에 대한 철저한 쇄국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탄압은 1860년까지 지속된다.

 

꿈틀거리는 프랑스의 간섭
응우옌 왕조의 계속된 서양 적개심은 결국 로마 가톨릭 선교사 박해사건을 일으키는 발판이 되었다. 프랑스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탄압으로 보고 이 사건과 왕조의 전체적 기독교 탄압 정책을 구실로 삼아 1858년 스페인과 연합하여 다낭을 침략한다. 프랑스는 베트남의 남부지방에 있는 사이공을 점령하고, 1860년에 남부 코친차이나를 공격하여 베트남 군대를 제압함으로써 영토를 빼앗았다. 이에 반응한 응우옌 왕조는 프랑스와 제 1차 사이공 조약을 맺게 되는데, 프랑스에게 영토 할양, 배상금 지불, 항구 개항 등 프랑스가 식민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고, 이는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베트남을 지배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베트남은 제 1차 사이공 조약 파기, 반프랑스 세력을 조성해 반란을 일으키는 등 프랑스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해보지만, 프랑스는 매번 강압적인 무력으로 저항을 제지하고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면서 그 힘은 약해졌다. 결국 당시 프랑스에 비우호적이었던 베트남의 황제 뜨 득 데 가 사망하면서, 1883년 프랑스의 보호국임을 공식 인정하는 제 1차 후에 조약을 체결했다. 베트남을 지지했던 청은 그에 맞선 프랑스의 강경한 태도에 물러서면서 제 1차, 2차 천진 조약을 맺고, 이로 인해 베트남은 프랑스의 완전한 식민지 국가가 되었다.

 

프랑스는 왜 베트남을 식민지 국가로 삼았을까?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의 이유는 크게 외부적 요소와 내부적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외부적 요소로는 영국과의 경쟁을 들 수 있다. 19세기 당시 지배국들은 식민지 국가를 보유하는 것이 국가의 권위와 힘과 관계가 있다고 인식했다. 이미 영국이 버마 남부, 싱가포르, 믈라카 등을 식민지 국가로 삼고 있었던 시점에서, 프랑스도 영국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동남아시아의 국가를 식민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베트남의 식민지화는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양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특히 시장이 넓고 물자가 풍부한 중국은 많은 서양 국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나라였다. 중국 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중국의 주변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고 싶어한 것이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나라들 자체도 중요한 시장이 많았고 원료 공급지로 적당했기 때문에, 서양 국가들이 식민지화에 더욱 혈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로 베트남에는 유교 사상이 깊이 퍼져 있었다. 베트남 왕조는 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동으로 기독교를 쉽게 포용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응오옌 왕조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많이 내세웠기 때문에, 이것이 프랑스를 자극하고 침략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프 전쟁(1884~1885)
청-프 전쟁은 1883년 중국 청나라가 프랑스에 제 1차 후에 조약에 대한 반발을 하면서 일어난 전쟁이다. 베트남이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을 때, 베트남은 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청나라는 베트남이 그들의 오랜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며 조약을 무효로 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청나라에는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 유영복, 황숭영 같은 인물들이 이끌었던 흑기군이 베트남으로 침입했는데, 베트남 왕조는 이들과 연합을 맺고 프랑스의 무력에 맞섰다. 그러나 프랑스의 근대적인 군함에 청나라가 대항하지 못하고, 1885년 프랑스 해군이 중국의 영토 일부를 점령하여 청나라에 압박을 가했다. 결국 1885년 프랑스와 중국이 제 1차, 2차 천진 조약들을 체결하면서 베트남의 식민지권은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는 베트남 전쟁과 연관이 있다?
베트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현대 세계사 중 가장 참혹했던 전쟁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고, 전쟁의 후유증은 현재 베트남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의 시발점은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와 연관이 있는데, 식민지화가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파리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었다. 이에 프랑스는 독일군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베트남의 식민지권을 독일군과 동맹국이었던 일본에게 넘겨야 했다. 그 후 1945년 일본과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었을 때, 일본은 베트남의 식민지권을 잃었다. 그 때 베트남 내부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공표한 인물이 호찌민과 그가 지도하는 민족 세력 비엣민이었다. 이에 프랑스는 식민지권을 되찾고자 호찌민에 반발하였고,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하고 만다. 이후 1954년 제네바 협상에 의해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 북쪽은 호찌민이, 남쪽은 서양 국가들이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남쪽은 응오딘지옘의 쿠테타로 인하여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지고, 이의를 제기한 호찌민과 남북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미국은 호찌민의 공산주의 세력이 주변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퍼질 것을 염려해 남쪽에 있던 프랑스 세력을 도와주려 전쟁에 개입하여,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전쟁을 시작했다.

 

고등부 학생기자 이수민(YCIS Y13)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포동 한국주말학교 "스무살 됐어요"
  2. 상하이 노동절 황금연휴 꽃놀이·전시·..
  3. [책읽는 상하이 238] 평범한 결혼..
  4. 농부산천, ‘정제수’ 출시 소식에 소..
  5.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0] 큰 장..
  6. 상하이 디즈니, 상업용 사진작가 퇴장..
  7. 중국인도 즐겨먹던 ‘이 약’ 효과 없..
  8. 한인여성회 ‘태극권’팀 상하이무술대회..
  9. 상하이 오피스 공실률 20년만 ‘최고..
  10. 中 스마트폰 시장 회복 신호 ‘뚜렷’..

경제

  1. 농부산천, ‘정제수’ 출시 소식에 소..
  2. 상하이 오피스 공실률 20년만 ‘최고..
  3. 中 스마트폰 시장 회복 신호 ‘뚜렷’..
  4. 광저우자동차, 화웨이 자율주행 기술..
  5. 현대차·기아, 바이두와 MOU 체결…..
  6. 테슬라, 중국판 완전자율주행에 바이두..
  7. 화웨이·애플, 같은 날 신제품 발표회..
  8. 中 4대 도시 상주인구, 다시 ‘증가..
  9. 中 부동산 정책 완화 기대감에 관련주..
  10. 中 4대 항공사 모두 국산 여객기 C..

사회

  1. 포동 한국주말학교 "스무살 됐어요"
  2. 상하이 디즈니, 상업용 사진작가 퇴장..
  3. 중국인도 즐겨먹던 ‘이 약’ 효과 없..
  4. 한인여성회 ‘태극권’팀 상하이무술대회..
  5. [인터뷰] “재외선거 투표 참여 어려..
  6. 中 상하이 등 20개 도시서 ‘온라인..
  7. ‘음악으로 만드는 행복’ 여성경제인회..
  8. 일찍 예매하면 손해? 노동절 연휴 항..
  9. 상하이 남포대교 한복판서 전기차 ‘활..
  10. 上海 뒷좌석 안전띠 착용 단속 강화

문화

  1. 한국민화협회 상하이지부 제1회 회원전..
  2. 상하이 2024 국제 플라워 쇼 개막..
  3. [책읽는 상하이 238] 평범한 결혼..
  4. [책읽는 상하이 237] 멀고도 가까..
  5. 희망도서관 2024년 5월의 새 책

오피니언

  1. [무역협회] 中 전자상거래, 글로벌..
  2.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0] 큰 장..
  3. [상하이의 사랑법 12] 손끝만 닿아..
  4. [산행일지 2] “신선놀음이 따로 없..
  5. [무역협회] 中 1분기 경제지표, '..
  6. [허스토리 in 상하이] 가고 멈춤
  7. [허스토리 in 상하이] 사월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