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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이제, 그들이 보인다

[2021-09-01, 14:33:43] 상하이저널
더위가 그만하다. 입추, 처서도 지나고 추석을 바라보고 있으니 절기는 어쩔 수 없는 게다.

초여름 산행 때 부주의로 이끼 덮인 바위를 디디는 바람에 미끄러졌다.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주는 순간 한 쪽 무릎이 돌아가며 부상을 당했다. 쉬어 보기도 하고, 살살 걸어보기도 하고, 병원도 가 보았다. 하지만 다 해결책이 되지 못했으므로 일단 푹 쉬어 보자며 바깥 출입을 삼가고 집에서 요양하며 지낸 지 한참이 지났다. 

답답하기도 하고 이제 슬슬 움직여보면 어떨까 싶어 공원을 좀 걷기로 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서 마음이 바뀌어서 동네 재래시장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시장으로 가려면 먼저 큰길을 건너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시장 쪽으로 가는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왠지 도로 쪽으로 미리 내려가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건, 작은 충격이었다. 하마터면 그렇게 할 뻔 했다. 다행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순간 확실하게 깨달았다. 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면서 도로로 내려가 있거나 혹은 신호가 채 바뀌지 않았음에도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하는지를.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느린 걸음걸이로 초록 불이 켜진 시간 내에 저 건너편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 조바심했을 거다. 제 때 건너가지 못하면 위험하기도 하고 직진 차량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직 신호가 바뀌지 않은 횡단보도에 먼저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단 몇 초의 시간과 자신의 안전을 아무렇지 않게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심 못마땅했다. 그런데 내가 아파보니 이제 그들이 보였다. 물론 위험한 행동이지만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멍하니 그렇게 서 있었다.

트럭에서 과일이며 달걀 같은 물건을 내리는 사람, 그것들을 받아서 정리하고 진열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싱싱한 걸 고르려고 바쁘게 눈과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시장은 더위에도 여전했다. 집 벨을 누르고 직접 전달까지 해주고 가는 친절한 대형 마트의 배달 시스템을 자주 이용하지만, 오히려 마트보다 다양하고 신선하고 가격까지 싼 장보기가 그리우면 가끔 시장에 들르곤 한다. 정육, 생선, 야채, 과일가게들이 같이 영업을 하고 있으므로 썩 유쾌하지 않은 여러 냄새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섞인다. 에어컨 같은 건 아예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더 그렇다. 마음껏 물건을 고르고 무게를 재서 계산까지 마치고 나오면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나는 시장이 좋다. 어떤 계절에 어떤 야채 과일 생선이 나는지를 제 때 알게 되는 자유, 아주 조금씩 사고 싶은 만큼만 살 자유, 정보와 감각을 동원해 맛있고 신선한 야채를 내 손으로 고를 자유를 누리는 것에다 덤으로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의 활기를 느낄 자유. 

큰 길가 상가 1층에도 슈퍼마켓이 있다. 각종 식자재들이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다. 옛 기억을 더듬어 상가 뒤편을 찾아가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직 시장이 건재함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봐서 편한 것, 내가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보는데 익숙해져 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무얼 생각하는지, 왜 저렇게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지게 된다. 상가 뒤 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거기 제법 큰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바쁜 도시생활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그것은 다시 삶의 패턴이 된다. 패턴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우리가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쉽지 않은 이유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상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고 잠시 고개를 들어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사실은 나를 보는 것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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