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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사랑법] 전 생애를 낭비해도 좋은 ‘상하이유태난민기념관’

[2023-09-04, 17:36:16] 상하이저널
[사진=상하이유태인난민기념관]
[사진=상하이유태인난민기념관]

몸을 섞는 것보다 더 짜릿한 건 그와 책장을 섞는 일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 함께 살면서 많은 것들을 한데 합쳤지만, 책장을 합치는 일만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역사와 경제, 경영, 중국 관련 서적을 주로 읽는 그의 책장과 소설 위주의 문학, 심리학, 철학, 예술과 여행 서적을 주로 읽는 나의 책장은 멀찌감치 떨어진 채 서로를 데면데면 바라본다.

책장을 섞는 데까지 미치진 못하지만, 가끔 그가 읽는 책을 슬그머니 훔쳐본다. 중국의 근현대사나 외국 자본가들이 중국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흥미를 느껴서가 아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던 책을 더듬으며 그의 리듬을 느껴 본다.

[사진=상하이유태인난민기념관] 

 

주말에 상하이유태난민기념관에 가보자고 한 건 그의 책상에서 몰래 훔쳐본 책 제목이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반짝일 그의 눈빛을 보고 싶었다. 책 속의 두 가문 서순 가와 커두리 가가 1만8천 명의 유대인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던 홍커우로 향했다.

“수정의 밤이 찾아왔고…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막스 라인)

1938년 11월 9일 밤, 반짝이던 건 수정이 아니라 나치스 돌격대와 독일인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깨진 유대인 상점과 시나고그의 유리 파편들과 당일 체포되어 집단수용소로 보내진 수만 명 유대인의 눈물이었다.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될 ‘쇼아’의 서막이었다. 

탈출을 원하는 유대인에게 비자를 내주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그때 빈 주재 중국 총영사 허펑산 박사가 유대인들에게 수천 장의 상하이 비자를 발급했다. 나치가 총영사관을 몰수했고, 본국으로부터 비자를 내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음에도 허펑산(何风山)은 자비로 사무실을 열어 ‘생명 비자’를 발급했다. 전시실에서 허펑산의 이야기를 읽으며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작은 숨구멍을 찾은 듯 숨을 몰아 쉬었다.

[사진=기념관 내 허펑산 박사 흉상]
 

상관의 지시를 그저 성실히 수행했던 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과 본국의 지시를 무시하고 ‘생명 비자’를 내주었던 허펑산의 차이는 의외로 선악이 아닐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곧 타인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여부였을 뿐. 

기념관을 나오자 그는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주변 지역을 빠르게 걸었다. 내리쬐는 햇볕이나 무더운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자산을 공산당에 넘기고 중국과 인연을 끊은 서순 가와 달리, 상하이에서 철수한 후에도 홍콩에서 사업을 지속 확장하며 중국을 계속 주시했던 커두리 가의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를 배워야 한다고 신나게 떠들면서.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
(하재연의 시 ‘4월 이야기’ 일부)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그의 책장과 내 책장을 합치는 일만큼 요원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리듬을 이해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글·사진_ 윤소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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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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