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아줌마이야기] 믿는 도끼에 찍히면 더 아프다

[2016-05-19, 19:29:30] 상하이저널

상하이에 온 뒤 얼마 안 있어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그 이듬해에는 메르스 사태로 시끄럽더니, 올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사건들이 매년 한 건 이상씩 일어나고 있다. 전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런 굵직굵직한 일들이 매해 일어나고 있으니, 정말 ‘밤새 안녕하십니까?’ 를 물어보며 살았던 일이 옛 일만은 아닌 것이다.


한 5년 전 서울의 광화문을 지나는 데, 여러 사진과 글이 게재된 판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사망하거나 건강에 막대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영유아가 숨을 못쉬어 죽고, 산모와 태아가 호흡 곤란으로 죽고, 건강하던 아이의 폐가 돌처럼 굳어지면서 역할을 제대로 못해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용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나도 그때 그 문제의 살균제를 사서 쓰고 있었다. 건조한 한국의 겨울을 보내고 나면 피부의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자다가 코가 막혀 몇 번을 깨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습기는 고마운 기계였고, 그 뿜어져 나오는 증기만 봐도 피부와 코가 촉촉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균 번식이 문제였다. 언론은 가습기 세균을 수치로 보여주며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고, 때맞춰 나온 살균제는 마법의 물건이었다.


나도 그 마법의 약품을 넣으면서 안도했고 라벤더 오일이 들어갔다는 광고에 흐믓하기까지 했다. 큰 아이를 낳고 첫 번째 겨울을 보내면서 열심히 이 가습기를 틀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절반을 안 썼을 때, 아이가 가습기를 내동댕이치며 고장을 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큰 아이가 자기 목숨을 스스로 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큰 아이는 지금 정도가 심한 비염으로 고생이다. 자다가 코가 막혀 벌떡 일어나기가 일쑤고 줄줄 흐르는 콧물 때문에 휴지가 필수 휴대 물품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걸 왜 샀을까... 그걸 왜 샀을까...’ 그걸 집어 든 그 당시의 영상이 자꾸 떠오르면서 가슴을 치게 된다.


나는, 아니 우리는 한치의 의심 없이 믿은 것이다. ‘인체에 무해하니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천연 라벤다 오일 함유’라고 적혀있는 그 병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매일 가습기 통을 닦아야 하는 불편에서 해방시켜 준 고마운 물건이었는데 믿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큰 사건으로부터 받은 충격 중에는 이렇게 믿었다가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되는, 결국 자기 손으로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는 죄의식이 크게 자리한다. 세월호 희생자 학생의 부모는 아이와의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 방송을 잘 듣고 하라는 데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단다. 그것이 결국 생떼 같은 아이를 차가운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내 손으로’ 만들었다며 가슴을 쳤다. 노상 훌쩍이는 우리 아이를 보며 배신감과 오묘하게 섞인 죄의식이 이 정도인데 아이에게 그 말을 한 부모님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번의 사고를 보면서 나조차도 이젠 ‘쉽게 믿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몰라서 속았고, 그게 분하고 억울하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분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OECD회원국이라는데 국가도 기업도 책임을 회피하고 등을 돌릴 때, 그렇게 쉽게 믿더니 결국 이런 꼴이 되었구나 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잘잘못이 밝혀지면서 뒤늦게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기업들의 수장에게, 관련된 사람에게 그 액체를 쏟아 붇고 싶은 분노감을 느꼈다. 잘못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피의자만 있을 뿐이니까.
오늘도 약간 쌀쌀한 날씨에 맹맹한 코를 연신 풀어대는 아들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저릿한 미안함을 느낀다. 이젠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게,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플러스광고

[관련기사]

전체의견 수 1

  • 아이콘
    상해장부장 2016.05.26, 13:43:24
    수정 삭제

    감동이 있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상하이에 살면서도 미처 몰랐던 것들Ⅴ hot 2016.05.28
    [상하이통] 상하이는 매력적인 도시다. 상하이는 화려함 속에 동양의 신비를 품은 도시다. 그래서 더욱더 궁금해지고 알고싶은 도시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 김구 선생 아들 김신 전 공군총장 별세 2016.05.19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4세.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황해도 안악에서 안신학교를 다니다가 1934년...
  • 삼성페이-알리페이 손 잡고 中 공략..애플페이 견제 2016.05.19
    삼성전자, 알리바바와 20일께 계약 발표 삼성전자가 중국 알리바바와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사업에서 손을 잡는다. 삼성페이 플랫폼 안에 알리페이를 받아들여...
  • 납세신고, 회사말소 안하면 '이런' 일이! hot 2016.05.19
    많은 사람들은 회사 말소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롭다고 생각해 운영을 하지 않는 회사에 대해 납세신고도, 말소도 하지 않고 방치를 한다. 거래내역도 없고 계좌에 자금..
  • 中 토지가격 폭등, 개발상 '땅 쟁탈전' 가열 hot 2016.05.19
    최근 중국 1선 도시를 시작으로 2선도시까지 번진 양도토지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18일 신화사에 의하면, 베이징, 상하이 등 1선 도시에서 부동산개발업체들의...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上海 중국 최초 전자비자 발급
  2. 中 상반기 부동산 업체 주택 인도 규..
  3. "2030년 中 전기차 업체 80%가..
  4. 中 144시간 환승 무비자 37곳으로..
  5. 中 최대 생수업체 농부산천, 잠재발암..
  6. 中 6월 집값 하락세 ‘주춤’…상하이..
  7. 2024년 상반기 中 GDP 5% 성..
  8. [인터뷰] 서울과 상하이, ‘영혼’의..
  9. 中 해외직구 플랫폼 급성장에 화남지역..
  10. 국내 시장 포화에 中 모빌리티 플랫폼..

경제

  1. 中 상반기 부동산 업체 주택 인도 규..
  2. "2030년 中 전기차 업체 80%가..
  3. 中 144시간 환승 무비자 37곳으로..
  4. 中 최대 생수업체 농부산천, 잠재발암..
  5. 中 6월 집값 하락세 ‘주춤’…상하이..
  6. 2024년 상반기 中 GDP 5% 성..
  7. 中 해외직구 플랫폼 급성장에 화남지역..
  8. 국내 시장 포화에 中 모빌리티 플랫폼..
  9. 中 3중전회 결정문, 300여 가지..
  10. 삼성, 中 갤럭시Z 시리즈에 바이트댄..

사회

  1. 上海 중국 최초 전자비자 발급
  2. [인터뷰] 서울과 상하이, ‘영혼’의..
  3. 얼리버드 티켓 20만 장 매진! 上海..
  4. ‘삼복더위’ 시작…밤더위 가장 견디기..
  5. 항공권 가격 천차만별…출발 전날 티켓..
  6. 上海 프랑스 올림픽, 영화관에서 ‘생..
  7. 上海 고온 오렌지 경보…37도까지 올..

문화

  1. 상하이한국문화원, 상하이 거주 '이준..
  2. [책읽는 상하이 246] 방금 떠나온..
  3. 무더운 여름, 시원한 미술관에서 ‘미..
  4. [인터뷰] 서울과 상하이, ‘영혼’의..
  5. 상하이, 여름방학 관광카드 출시…19..

오피니언

  1.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3] 나이키..
  2. [[Dr.SP 칼럼] 장마 후 여름이..
  3. [허스토리 in 상하이]내가 오르는..
  4. [독자투고]미국 유학을 위한 3가지..
  5. [허스토리 in 상하이] 재외국민 의..
  6. [무역협회] 신에너지 산업의 발전,..
  7. [상하이의 사랑법 15]부족한 건 사..
  8. [무역협회] AI 글로벌 거버넌스,..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