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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45] 채식주의자

[2024-07-08, 15:13:42] 상하이저널
한강 | 창비 | 2022년 3월 | 원서 : The Vegetarian
한강 | 창비 | 2022년 3월 | 원서 : The Vegetarian
몇 해 전 과로와 심각한 저체중으로 한의원을 찾았다. 중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몸이 말라 비틀어진 고목 같군요.’ 여전히 한창때라 생각하는 서른아홉 여자에게 ‘마른 고목’ 같다는 표현 은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그만큼 망가진 내 몸은 피로 누적인 채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살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기도 했다. 

멘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나는 ‘마른 고목’을 내내 떠올렸다. 물기 한 점 없이 바스러질 듯 건조한 시선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알 수 없이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소설은 세 단락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몇 시간 내에 술술 읽혔지만 읽고 난 후 이틀간 악몽을 꿨을 만큼 불편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평범했던 주인공 영혜가 채식을 하고 나무가 되겠다며 정신의 건강을 잃어가는 내용을 통해, 영혜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걸쳐 계속해서 겪는 냉대와 폭력성을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1부에서는 영혜의 남편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범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타입이던 영혜의 남편은 결혼조차 현실적이었다.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평범한 여자라는 이유로 영혜를 선택한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열렬히 사랑한다며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이 청춘 아니던가. 때론 무모할 정도로 사랑만을 외칠 시기에 ‘평범해서’라는 이유로 선택받은 여자. 영혜는 그렇게 남편에게조차 푸석푸석하게 현실적인 선택지였고 사랑받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평범했던 영혜가 어느 날 나쁜 꿈을 꾼 이후로 이상해진다. 냉장고의 육류를 모두 내다 버리는가 하면, 직장 생활의 중요한 식사 자리에 노브라로 등장해 고기를 맛있게 먹는 주변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못함으로써 분위기를 다 깨고 만다. 장인 장모 및 처가댁 식구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려 보려 하지만 장인어른이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 하자 영혜가 칼로 손목을 긋는 소동이 일어나며 ‘평범했던’ 일상은 모두 사라지고 남편도 떠나버린다. 

2부에서는 영혜의 형부 시점이다. 영혜의 형부는 생활력 없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아내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무능한 남편이다. 어느 날 형부는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듣고, 몸과 마음이 성치 못한 영혜에게 패륜적 성욕을 품는다. 결국 작품을 핑계로 성관계를 하다 영혜의 언니에게 발각되어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영혜의 형부는 잠적한다. 

3부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점이다. 평생 생활력 있고 씩씩하게 살아온 여자 인혜도 함께 무너 져간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영혜를 홀로 챙기며 돌보지만, 영혜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겠다며…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갔으니까. 나는 주인공 영혜와 인혜를 이해해 보려 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 영혜를 물었다는 이유로 키우던 개를 자전거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마을 어귀를 돌던 아버지, 죽은 개의 살코기가 연하다며 강제로 먹이던 일화를 통해 영혜가 얼마나 폭력적인 가정에서 살아왔는지… 산에서 길을 잃었던 어린 시절, 집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언니와 달리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어린 영혜의 마음을 읽으며, 난 영혜도 인혜도 가슴 저리게 불쌍했다. 폭력에 저항조차 못했던 영혜는 그렇게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고, 어느 정도 일상을 씩씩하게 맞닥뜨리던 언니 인혜도 속으로는 아픈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믿는 것은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영혜는 그래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는 굶고 야위어 피를 토하면서도 끝내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나무가 되겠다며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영혜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고 처연하기까지 해서 책장을 덮을 때쯤 난 가슴이 쿵쾅거리며 손도 떨렸다. 

영혜가 평범해서 선택했다가 병들자 떠나버린 남편 말고, 영혜를 좀 더 보듬고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영혜도 뒤늦게 사랑받으며 자신의 뿌리 깊은 병을 치유하며 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더하여 영혜의 언니인 인혜에게도 측은지심을 느꼈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남편은 선택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인혜, 영혜 자매에게 폭력적인 아버지의 자화상은 그렇게 인생에 걸쳐 모질게 아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그녀도 영혜같이 힘들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겪었을까? 작가의 목소리는 과연 힘이 있을까? 그녀도 ‘마른 고목’ 같지는 않을까? 작가도 이 글을 쓰는 내내 아팠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써낸 작가의 용기와 노력에 깊은 경외감을 보낸다.

최인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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