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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한중 공동의 역사’ 쑨커지 교수에게 듣는다

[2019-10-12, 07:07:40] 상하이저널
韓中 공동의 역사! 공통의 아픔!
양국 우호•협력의 새시대를 연다!

‘한중 공동의 역사, 중국학자•작가에게 듣는다

[인터뷰 ①] 
쑨커지(孙科技) 푸단대 역사학 교수

상하이저널이 10월 10일로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한중 공동의 역사, 중국인에게 듣는다’ 기획을 진행했다. 중국학자와 작가들은 항일 투쟁의 공동 역사와 민족의 공통 아픔을 어떻게 이야기 할까.  

한국과 중국은 1919년 반제국 반식민 민족주의의 운동이 폭발했던 공동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 3.1운동과 중국 5.4 운동이 올해 100주년을 맞는 등 동시대 ‘항일 운동’이라는 같은 역사를 갖는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한중 양국은 일제강점기의 위안부 피해와 민간인 학살 등 공통 아픔도 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당시 중국의 도움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일제에 맞서 한중 통일 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 만큼 ‘항일 운동’은 한중 역사뿐 아니라 한중 관계에서 중요한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한중 공동 역사인 ‘항일•반제국•반식민•민족주의운동’에 대해 전문 학자와 작가를 만나 중국에서 펼쳐졌던 한국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어본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자 한다. 또 중국 공동의 역사와 공통의 아픔, 항일 연대 투쟁의 역사를 토대로 한중 관계에 우호와 협력의 틀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공동 역사에 대한 기억, 中韩 우호 관계 이끌 것”

[쑨커지(孙科技) 푸단대 역사학 교수] 

허난(河南) 출신으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 1994년부터 4년간 고려대에서 유학해 한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상하이 푸단대학(复旦大学)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임정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중국에서 열린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해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중국인의 눈으로 재조명했다.


사드 이후 한중 관계 회복 속도가 더딘 가운데 임정 100주년을 맞았다. 한류열풍 속에서 맞은 100주년이라면 어땠을까. 교민들의 아쉬움은 크다. 대외적으로 임정 100주년 관련 행사가 많았던 상하이는 학회와 세미나에서 공동의 역사로 양국 우호를 강조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얘기하려는 것 같았다. 항일 식민지 역사를 둘러싼 중국 학자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한국어로 발표하는 중국인 쑨커지(孙科技) 교수를 만나는 것은 놀랍지 않다.

푸단대학 쑨커지 교수는 상하이 교민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역사학자다. 한국에서 한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개화기와 일제시대 역사 전문가인 그는 항일 투쟁의 공동의 역사, 한중 혁명가들의 공동 분투 연대의 역사에 집중했다. 쑨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중 관계 회복과 양국간 우호•협력의 새시대를 내다봤다. 

“사드 이후 최근 한중 관계도, 상하이 한인사회도 예전 같지 않네요.”
“왜요? 좋잖아요.” 

한국어가 유창한 쑨 교수는 자주 받았던 질문인 듯 웃으며 곧바로 대답한다. 2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쑨 교수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 한중 관계도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임시정부 100주년 얘기를 시작으로 역사적인 공통점을 찾으며 한중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임시정부가 세워진 상하이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 당시 한국과 중국의 항일 운동 역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국과 한국은 항일 투쟁이라는 공동 역사는 맞지만 처한 상황은 달랐다. 한국은 일본에게 주권을 뺏긴 나라였던 반면, 중국은 많은 서양의 침략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침략당한 반식민지 상태였다. 식민지냐 반식민지냐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양국 상황이 달랐으므로 한국은 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중국은 나라의 독립운동이 아닌 반침략,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항일 운동에서만큼은 중국과 한국은 민족독립, 자유쟁취, 반파시즘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양국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상하이는 물론 중국 전역에서 펼쳐진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어떤가?

중국은 한국 혁명가들이 펼친 항일 투쟁 독립운동에 대해 반제국주의 운동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 반제국주의 세력의 역사에서 윤봉길을 비롯 한국의 독립지사들이 중국에서 전개한 여러 활동들은 피압박 약소민족의 항일운동, 세계적인 반파시즘 저항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민족사의 시각으로만 독립운동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을 비롯 베트남,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피압박 민족과 연합해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전세계 식민지 해방운동으로 범위를 넓혀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저항 투쟁의 역사가 다소 축소 해석되는 분야는 또 어떤 것이 있나? 

“3.1혁명이 3.1운동으로 축소 해석된 것 아닌가”
앞서 말한 것은 전반적인 독립운동에 대한 한국의 시각을 얘기한 것이다. 축소된 항일 운동사를 짚어보자 
먼저, 중국 역사서 <중국항전사>은 윤봉길 의거, 조선의용군의 활약을 세계적인 반파시즘 저항운동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항일운동사는 국가의 독립운동 쟁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보다 넓은 관점이다. 한국 독립지사들의 활동이 좁혀 해석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3.1운동 원래는 3.1대혁명으로 불렸다”
두 번째는 3.1운동이다. 당초 3.1운동은 3.1혁명, 3.1대혁명으로 불렸다. 당시 한국언론도 혁명으로 표기했다. ‘혁명’이 ‘운동’으로 바뀐 것은 독립운동 활동이 축소 해석된 느낌을 받게 된다. 

“3.1운동 이전 독립운동사 연구 부족하다”
세 번째로 아쉬운 것은 한국에 3.1운동 이전 독립운동 역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일 합방부터 3.1운동 시기까지의 역사 기록이 부족하다. 아마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자료나 기록이 파기됐을 것이다. 중국언론이나 논평 등 검색해보면 당시 소식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중국 동북부, 러시아, 시베리아, 일본, 미주 등 해외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 비해 역사 기록은 많지 않다.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해외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중국자료를 참고해서라도 3.1운동 이전 독립운동사가 깊게 다뤄졌으면 싶다. 

“윤봉길 의거 이후, 상하이 한인들의 독립운동 있었다!”
네 번째는 1932년 윤봉길 의거 후 임시정부가 이동하면서 상하이에서의 한국독립운동 기록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임시정부는 일본 단속을 피해 상하이를 떠났지만 1932년부터 1938편까지 상하이에 남아 펼쳤던 한인들의 활동이 중국 자료에 남아 있다. 일본 감시를 피해 단체행동이 아닌 개인적인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예로 1932년부터 1938년까지 바다를 통해 장강과 육로로 진격해 들어오는 일제에 맞서 상하이에서는 치열한 항전이 펼쳐진다. 상하이전투, 즉 ‘송후항전(淞护抗战)’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1937년 8월부터 12월까지 항전 시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처절했던 전투로 평가되는 ‘송후회전(淞沪会战)’에서 한인 청년이 일본군함에 포탄을 던졌다는 기록이 있다. 임시정부가 떠난 후에도 상하이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항일 운동 등 한국과 중국의 공동의 역사가 한중 관계에 어떤 의의와 영향을 미치나?

당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중국공산당과 한국독립운동가들의 관계 등을 중한 관계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중국의 역사자료가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문화, 사회, 지리적인 것뿐 아니라 공통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 공동의 역사가 중한 우호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에도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도 좋은 영향은 계속 추진하고, 나쁜 영향은 극복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되려면 중국학이나 한국학에서 각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언론이 가장 이성적이지 않는 것 같다. 일반인과 정치인 등은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더라도 언론은 중한 관계를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다뤘으면 한다.

한중 관계를 낙관적으로 보나? 그렇다면 이유는?

낙관적이다. 앞서 말한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비슷하고 공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앞으로 양국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양국 교류의 중간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래왔듯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또 중국과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다. 그만큼 지혜로운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직후인 3년 전 양국 관계가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지금 어떤가.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지혜롭게 찾아 낼 것이다.

고수미 기자


쑨커지(孙科技) 교수
1984~1988 허난대학(河南大学) 역사학 전공
1988~1991 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한국사 석사
1991~1994 상하이교육학원 근무(화사대)
1994~1998 고려대학교 한국사학 박사(개화•일제시대 역사)
1998.9~ 상하이 푸단대학(复旦大学) 역사학과 교수

[중한 혁명가들의 공동 분투] 

20세기에 진입한 이후 상하이와 한국 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많은 한인들이 상하이로 들어와 빠른 속도로 상하이의 중국인사회에 융합했고 중국인의 각종 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또 중국인과 함께 각종 단체를 조직해 상호 제휴, 상호부조를 실천했다. 

중한 인사가 공동으로 조직한 단체 가운데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가 가장 유명했다. 1921년 한인 여운형, 윤현진 등이 중국인 등과 함께 ‘중한 양국 혁명을 추진하고 교육, 산업, 경제상 상호 협조한다”는 목으로 조직된 중한호조사는 혁명에서의 상호지지뿐만 아니라, 양국인민의 상호이해와 교류를 추진했다. 

1922년 10월, 중한호조사는 중한어학강습소를 개설해 한인들에게 중국어를 강습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국인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쳤다. 중한호조사는 학예회를 열고 이를 통해 중한 우정을 두텁게 했다. 

[조소앙과 중국인 황개민의 우정]

한인과 중국인의 교류가 중 조소앙과 황개민(黄介民)의 깊은 우정은 중한 민간 교류의 미담으로 전해진다. 조소앙과 황개민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学) 법학부를 졸업한 동문이다. 1915년 7월 일본에서 황개민은 조선유학생들과 함께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조직했다.

이후 얼마 지지니 않아 그와 일부 조선유학생들은 조선으로 가서 조소앙 등 조선독립운동 인사와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폭넓은 왕래를 가지면서 둘의 우정은 깊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중한 양국 혁명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서로 격려하고 협조했다. 

중국에서 조소앙의 저서 출판이 자금난으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황개민이 자금을 지원해 조소앙은 <김상옥전(金相玉傳)> <유방집(遺芳集)> 등을 출판해 한국혁명 선전에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자료: 상해한국문화지도(上海的韩国文化地图)-쑨커지, 이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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