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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기차

[2018-03-15, 09:32:30] 상하이저널

한국에서 스물여덟 해를 살고 중국에서 스물두 해를 살아가고 있다. 곧 고국에서 살던 때와 같은 햇수를 이 곳에서 살게 될 날이 올 듯 하다. 한국에서 스물여덟 해를 사는 동안 운송수단으로 기차를 타 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자주 이용하는 것은 늘 버스였고 자동차였다. 그래서인가 기차를 탈라치면 넓은 창에 비쳐지는 바깥 풍경이 액자 속의 그림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비위가 약해 차멀미가 심했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그 후유증으로 지쳐 잠자기가 일쑨데 기차로 이동할 땐 하나라도 더 보려고 도착할 때까지 밖을 보고 있곤 했다.

 

중국에서 스물두 해, 기차 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참 많이도 기차를 탈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 다녀온 후부터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 신혼시절 남편의 홍콩출장에 동행하게 됐다. 갈 때는 비행기로 갔지만 돌아올 땐 홍콩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침대기차를 이용했다. 지금처럼 고속철이 없던 1997년 홍콩 반환 전날 우리는 홍콩을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중국에서 처음 타보는 기차인데다 침대기차를 잔뜩 기대를 했던 듯 하다. 홍콩에서 베이징까지 만 이틀이 걸리는 시간이었다.

 

한 칸에 침대가 4개 있었는데 홍콩을 출발 후 5시간이 채 안되어 다른 두 사람의 낯선 승객이 타고 나서 침대기차의 낭만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았다. 아침이 되니 한 승객은 공동 테이블에서 수염을 깎아 바닥에 버렸고 나가기가 귀찮은지 찻물을 바닥에 붓기도 했다. 베이징에 도착하니 홍콩은 중국에 반환이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침대기차는 타지 않는다. 후에 아이를 둘 낳으면 한 칸을 통째로 빌리지 않는 한 타지 않으리라 했으니 중국에 온 지 얼마 안돼 충격을 먹었던 듯 하다. 그래도 역사적인 순간 홍콩과 베이징을 이틀에 걸쳐 오가며 중국에서의 첫 기차여행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고속철이 생긴 지금, 중국 전역이 기차로 일일생활권이 된 듯 하다. 홍콩에서 베이징이 이틀이 걸리던 추억은 이제 20년 전 일이 되어 강산이 변해 버렸다. 10여개의 나라를 합쳐 놓은 듯한 대륙 이곳저곳을 기차가 누비고 다닌다. 몇 년 전만 해도 남편의 출장 운송수단은 먼 곳은 비행기요 좀 가까운 곳은 자동차였다. 항저우, 난징, 쑤저우, 샤오싱 등 화동 근처를 지하철을 타듯 편하게 고속철을 타고 왕복할 수 있음을 본다. 즈푸바오로 기차표를 사고 곳곳마다 잘 지어진 역사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20년 전 선전(深圳)의 건설은행에서 돈을 송금하면 2주 후 베이징 건설은행에 돈이 들어오던 시절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됐다.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는 큰아이를 배웅했다. 함께 지방에서 캐리어를 끌고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여전히 설레는 창밖이다.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고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들, 집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볼 일이 있어 1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지만 항저우로 가는 고속철을 타며 바라본 풍경이 이 곳의 20년 세월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다. 그 풍광도 설렌다. 오직 기차를 탈 때만 느끼는 사색과 설렘에 빠져든다.

 
둘째의 입시가 머지 않았다. 문득 둘째의 입시가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침대기차를 다시 타고 싶다. 상하이에서 홍콩까지 침대기차가 무색하게 빨리 도착할 것 같지만 온전히 우리 가족이 한 칸을 통째로 애매해 여행을 하고 싶다. 창 밖에 스쳐 지나갈 20년을 눈을 감고 바라본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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