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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핑크는 취향

[2019-06-21, 05:38:08] 상하이저널
초록색 / 파랑색과 주황색 / 연보라색과 연하늘색

위에 나열한 색깔들은 우리집 세 명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깔이다. 여자라고 무조건 분홍색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조금은 뜬금없이 두 딸들과 좋아하는 색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둘째 아이는 3학년 때부터 3년 동안 학교 운동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해도 아이들 성별에 따른 신체나 운동능력 차이가 없어서 남녀혼성 한 팀으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5학년이 되니 키 차이도 조금씩 나고, 무엇보다 달리기와 몸싸움에서 남학생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중요한 시합에서는 남학생들로만 팀을 꾸리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결국 여학생들은 코치에게 제안을 해서 그 종목 초등부 최초로 여학생팀을 만들게 됐다. 

여학생팀으로 경기에 첫 출전하던 날, 코치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해왔다. 바로 여학생팀을 위한 유니폼이었다. 코치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진분홍 유니폼을 ‘짜잔’하고 꺼냈을 때, 나는 아이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게 됐고 나 역시 3초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이어서 들리는 아이들의 거센 항의. 


“색깔 촌스러워요.”
“분홍색 싫어요.”
“왜 우리한테 안 물어봤어요? 여기서 분홍색 좋아하는 애 아무도 없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거침이 없었고 솔직했고, 코치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코치의 서프라이즈 선물에 대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고정관념 때문에 망했다고나 할까. 진분홍 유니폼을 입고 떨떠름하게 앉아있는 여학생들을 보고 한 남자아이가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한 마디를 했다.  

“너네 왜 촌스럽게 바비같은 분홍색 옷을 입고 있냐.” 

바로 그것이었다. 그동안 성별에 차이를 두지 않고 한 팀으로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에서 갑자기 바비의 핑크빛 판타지에서 못 벗어난 ‘여자 아이’로 인식돼 버린 것이다. 달리기도 빠르고 오히려 몸싸움에서는 오빠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맷집을 가지고 있는 우리집 둘째 아이가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초등 저학년 때 바비 사교계를 은퇴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나와 달리 내 동생은 아들만 둘이 있다. 평소에 패션에 관심 많은 동생이 아들만 둘을 낳고 나서 했던 한탄이 기억이 난다. 남자 아이들 옷 코너에 가면 남색, 파랑색, 회색 밖에 없다고. 무슨 옷을 사도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인다고.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동생은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아들들에게 진분홍, 연분홍, 빨강색, 노랑색, 주황색, 무지개색 등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피부가 유난히 하얀 그 집 아들들은 화려한 색깔의 옷이 잘 어울렸다. 굳이 문제라면 머리까지 단발로 긴 조카가 분홍색 티셔츠에 빨강색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여자 아이로 안다는 점, 그리고 남자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보이는 요상하고 심란한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도?

여학생팀으로 두 번째 시합에 출전하게 되던 날, 한 켠에서 여학생들이 분홍 유니폼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던 그 순간, 내 눈에 거대한 진분홍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코트에서 시합 중인 어느 중학교 남학생의 발이었다. 나에게 핑크는 커피 광고 속 김태원 아저씨가 긴 머리 찰랑거리며 입고 있었던 그 핑크색 스키복이었는데… 앞으로는 이름 모를 중딩 남학생의 운동화로 기억될 것 같다. 핑크는 취향.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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