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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저널 창간 8주년 기념<독자체험수기 공모전>-<좌충우돌 중국생활 체험기> 상하이에서의 나의 2002년

[2007-10-13, 05:09:03] 상하이저널
2000년 2월 23일!
우리 가족이 홍치아오(虹桥)공항에 내려, 상해에서의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온 날이다. 못내 걱정이 앞서, 안심이 안되신다는 시부모님과의 동행이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들의 뇌리 속에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관념뿐만 아니라 공산체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절이라, 상해에 살기로 결정을 내린 우리가족으로서는 부모님을 설득하려는 한 방편으로 같이 오게 된 것이었다. 우린 공항에 마중 나온 교포 직원을 따라 치신루(七莘路) 완커(万科)로 향했다. 아파트(小区) 입구에 들어서니, 과연 정문에 보안(保安)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대부분 저층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산뜻하고 아담해 보이는 게 평화롭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이 살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이 더 정겨운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었다.
3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중국 말에 听不懂이었던 난, 연변 교포아주머니에게 집안 살림과 애기를 맡기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24개월 밖에 되지 않아 한국 유치원에서 입학허가를 받지 못했음). `애기는 아프면서 큰 다'고는 하지만, 아픈데도 병원 따라가지 못하는 게 제일 가슴 아팠다. 병원에 한국부가 없어 따라 가 봤자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그러던 사이, 같이 병원에 갈 기회가 있어 따라 나섰다. 갈 때마다 손가락을 찔러, 피를 뽑아 검사를 한다더니, 정말이지 열이 펄펄 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검사부터 받게 했다. 체온이 너무 높은 관계로 링겔을 맞자 했다. 여기서 난 중국인들의 경제적 합리성(?)을 보게 되었다. 링겔을 앉아서 맞을 건지, 서서 맞을 건지를 먼저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링겔을 앉아서 맞다니? 말도 안 돼! 당란(当然)누워서 맞아야지! 그런데 우리 아주머니 말이 더 놀라웠다. 앉아서 맞으면 가격도 싸고(5元),여러 명 같이 앉아 담화도 나눌 수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는 것! 그럼 누워서 맞으면 얼마냐? 물으니 10元이란다. 그런데 아이도 앉아서 맞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옆에 앉은 중국아줌마, 아저씨들이 "很 勇敢!* 很 勇敢*을 연발했다. 아마 아이는 이 말을 듣고 우쭐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리라.
2학기에 접어들어 조금씩 중국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어느 날, 난 학교에서 퇴근할 때 다음날 수업시간에 쓸, 종이로 만든 동물 왕관을 몇 개를 가지고 왔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복층으로, 주로 2층에 침실이 있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아이도 이젠 제법 혼자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재미를 느끼고 있던 시기였었다. 잘한다고 방심하면 꼭 탈이 난다더니, 저녁을 먹고 큰아이 방에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사모님! 사모님!*하는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계단 밑에서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아이가, 내가 퇴근 길에 학교에서 가져 온 종이 왕관을 쓰고 계단을 내려오다, 왕관이 좀 컸던 모양, 그만 눈을 가리게 되었던 것! 앞이 갑자기 안 보이게 되자, 계단을 헛짚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걸 아주머니가 계단 밑에서 받았단다. 아주머니가 울기 시작하자, 아이도 놀래서 덩달아 울어대고 그야말로 울음바다 그 자체였다! 큰아이에게 택시를 부르게 하고, 난 가재 수건으로 이마를 꾹 누르면서, 서둘러 치바오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무 일 없기를 수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 하면서 응급실에 들어가서 황급히 상황을 설명하니, 여기 치바오 병원 응급실에는 외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걸 어쩌나? 순간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모든 생각 기능이 마비되는 듯 하더니 그것도 잠깐, 얼른 수첩을 꺼내들고 중국통, 상하이통인 동료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수화기의 통화음이 세상에 그렇게 길 줄이야!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떡하지?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 걱정은 한순간에 사라져 갔다. 凤林路에 있는 중산의원(복단대하교 부속병원)에 외국인 전용 儿科가 있단다. 자기가 전화를 미리 걸어 수술 준비를 부탁해 놓을테니, 마음 진정시키고 서둘러 가란다.
택시 속에서 한편으론 상처 부위가 감염될까 가재 수건으로 꼭 누르면서, 또 한편으론 아이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오지 않길 수 없이 수 없이 기도 하면서, 택시기사와 덩달아 나도 내내 머릿속으로 내리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었다. 웬걸! 평상시엔 교통규범도 잘 안지키고 쌩쌩 달리던 택시기사가 많기도 많더니만, 이날의 이 기사 아저씨! 어쩌면 좋아? 맘이 급해 죽겠는데, 신호등 꼬박꼬박 지키고, 과속도 하지 않고, 정말이지 속에 불이 날 지경! 평상시 같으면 `어머, 중국에도 이런 모범 운전기사가 다 있네!' 감탄했을 터 이지만, 이 순간은 그냥 삐뽀!삐뽀! 거리면서 마구 무단횡단해 주면 좋으련만 하는 이기적이고 간사한 생각뿐이었다. 아마,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 다급하고 아이 이마의 피가, 나를 도덕적 양심과는 거리가 먼 엄마로 만들었을게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으나, 파상풍 검사부터 하잔다. 세균 감염 여부를 알아내야 한다면서. 빨리 서둘러 찢어진 부분을 꿰맸으면 좋으련만, 의사는 태연히 결과를 기다렸다. 그 땐 의사가 정말이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로선 당연한 절차였음을.... 그 땐 서두르지 않은 의사가 마냥 밉기만 했었다. 아이의 왼쪽 눈썹 위 꿰맨 자국을 볼 때면, 그 날의 나의 부주의함과 다급함이 머리에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물론, 그 친구의 따뜻한 맘도 내 맘속 깊은 곳에 그윽이 간직하고 있다.
이제 그 아인 자라서 벌써 2학년이나 되었다. 그 이후론 별 큰 사고 없이 잘 자라고 있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은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큰아이가 지금 그 중산(中山) 병원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다. 한 번씩 큰 애 만나러 그 병원에 근처에 갈 때면, 그 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2층 수술실 계단으로 올라가던 모습이 아스라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 아이들이 이 병원에 꼭 올 운명이었나' 생각하며, 입가에 이젠 제법 여유로운 미소도 지어진다.
상해에 살면서 많은 따뜻한 사람들,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떠나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고 날 도와 준 걸 기억조차 못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내 맘속엔 지워지지 않는 이제는 아름다운 화첩으로 남아있다.
▷최영옥(상하이 진회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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