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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 말어? 명절이 다가온다!

[2014-01-21, 14:29:09]
꼭꼭 숨어? 말어? 명절이 다가온다!
 
공부는 잘하니? 대학은? 졸업하고 뭐하려고? 취업은 어떻게 되고 있어? 애인은 있는거야? 대체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속사포처럼 이런저런 근황을 묻느라 바쁘지만, 정작 대답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다.
이처럼 궁금하기도 해서, 취조하듯 묻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추석을 맡아 한국의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조사한 결과, 구직자의 26%가 ‘친척 누구누구는 대기업에 들어갔던데’를,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30대 미혼 남녀 51%는 ‘내년엔 결혼 하니?’를 가장 듣기 싫은 답변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말까지 끼어 긴 연휴가 된 올 ‘설’, 재상하이 한국인들 역시 호환마마보다 두렵다는 명절과 친인척의 질문에 떨고 있을까?
 
“중국어 해봐! 영어도 한 번 해봐!”
친인척들의 닦달 같은 질문은 중·고등생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미국학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Brown(10학년)은 곧 시작될 Chinese Vacation이 까마득하다. 오랜만의 귀국길, 두근거리는 설레임도 잠시 연휴가 시작되면 만나야 할 친인척들 생각 때문이다. “중국에서 국제학교 다닌다고 하니, 얼굴만 보면 ‘중국어 해봐, 영어도 해봐’라고 재촉해요.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죠? 你好? Hi?” 난감하기 그지없는 어른들의 질문에 진땀이 난다는 그는 “어쩌면 차라리 상하이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난색을 표했다.
 
“중국대학 다녀 뭐해?”
상하이 유명대학교 10학번인 정 군. 공공관리학원에 재학 중인 그는 대학 진학 시절부터 들어온 “중국대학 나와서 뭘 할 수 있다고”라는 말이 귓가에 윙윙거린다. 더군다나 졸업을 코 앞에 둔 요즘 같은 때면 한숨이 푹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 그렇다고 귀국을 미룰 수는 없는 일. 학생특가 할인 왕복 티켓을 구매한 정 군은 명절 연휴기간 동안 같은 대학 출신의 유학생들과 여행을 떠날 참이다. “하얗게 내리는 눈도 볼 겸 스키도 탈 겸 일일 리프트권을 구입해 신나게 논 이후에 근처 찜질방에 갈 거에요. 졸업 후, 이름난 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상황은 바뀌겠죠”
 
“나는야 백조, 그래서 훨훨 날아가고파”
지난해 6월, 상하이짜오퉁대(上海交通大学)를 졸업한 이 모양은 현재 한국으로 귀국해 취업 준비 중이다. 하반기 채용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반기를 노리고 있다는 그녀에게 커다란 고민거리는 바로 ‘명절’. “비싼 학비며 생활비며, 유학까지 다녀와 아직까지 취업도 못하고 저게 뭐람” 걱정 반, 한숨 반 혀를 끌끌 차는 친척들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청년실업이 사상 최악인 현재, 중국대학 출신의 유학생들 역시 난조를 겪고 있는 것. 이 모양은 친척들을 피해 근처 도서관이든 카페든 어디서든 시간을 때울 계획이다. 코 앞으로 다가온 토익시험도 준비할 겸, 잔소리에서 벗어날 도피인 셈이다.
 
“오 마이 갓! 직장인 타이틀”
중국 현지 기업에서 3년 차 직장인인 한 씨. 해가 바뀌어 30대에 접어든 그녀는 요즘 한국에 돌아갈 생각에 골치가 아프다. ‘남자친구는 있냐, 결혼은 언제 하냐, 선이라도 봐야 한다, 누가 널 데려가겠느냐’ 마음에 비수를 꽂는 친인척들의 넉살 때문이다. 그녀는 친인척의 잔소리도 피할 겸, 명절음식 준비에 힘 겨운 어머니도 구출할 겸 ‘제주도 여행’을 기획했다. 상하이와 서울의 중간인 제주도에서 가족을 만날 계획인 한 씨는 “다들 명절을 휴가 삼아 여행을 가는 추세다. 부모님의 질문공세를 피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친척들의 따가운 눈총도 피할 겸, 효녀 노릇도 할 겸 1석 2조인 셈”이라며 웃어 보였다.
 
“좋기는 한데 여비 걱정이….”
오랜만에 부모님도 볼 겸, 고향의 향기도 느껴볼 생각에 들뜬 양 씨. 그러나 5인 가족의 왕복 비행기 값, 세뱃돈, 기타 경비 등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명절 기간 한국행 왕복 비행기 티켓은 평균 3,000위안 안팎. 저가 항공사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10,000위안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해외에서 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웃어넘기긴 하지만, 비용적인 부담은 귀국의 설레임마저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들 왜 이러실까!”
지난 해 자녀를 모두 대학에 진학시킨 김 씨. 어느덧 ‘인생은 60부터’라는 유행어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전쟁후유증을 겪으며 성장한 김 씨에게 있어 명절은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365일 중 단 몇 일,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이 날이 인생 최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겠냐”고 일축한 그는 명절기피증, 명절 도피 휴가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친인척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절이야 말로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묻는 질문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조상에 대한 예도 갖추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올해 새내기 대학생이 된 김 씨의 자녀 역시 “이기적인 사회에서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명절이 좋다”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세배도 하고, 저녁에는 고스톱도 치며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이토록 명절에 대한 반응은 나이, 인식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본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설을 맞아 상하이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명절이 다가왔다! 숨을까 말까’ 기획특집을 준비,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본 조사는 재상하이 한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카페, 동호회, SNS 등을 이용해 전 계층에 대해 실시되며, 답변은 메일 또는 비밀 댓글 등으로 수집할 예정이다. 약 일주일간 진행될 본 설문조사는 명절에 대한 교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효진 기자 kimhyo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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