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상하이는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한때 이 도시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피난처가 되어줬고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곳이다. 지금도 상하이 곳곳에서, 우리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편전쟁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와이탄,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위안부 역사를 담은 홍커우의 ‘다이살롱’까지. 위안부 역사는 한국만의 아픈 역사가 아닌 다른 피해 국가들의 공통 역사이며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왔다.
철거위기에서 벗어난 일본군 첫 위안소 ‘다이살롱’
1932년 상하이에 일본의 첫 위안소가 지어졌다. 여기서 수많은 여성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와 일본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다. 현지 주민이 말하길, 중국 여성들뿐만 한국 여성들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이러한 일본군의 만행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의 목격자인 낡은 ‘다이살롱’ 건물을 재개발해서 학교를 건설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주민들은 걱정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다이살롱’은 가까스로 철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역시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를 해준 덕분에 역사적인 증거를 보존할 수 있었다.
상하이 위안부역사박물관, 소녀상
상하이 위안부 역사박물관도 이 도시의 역사적 증거물이다. 이 박물관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위안부 피해 주제로 전시한 박물관이며 당시 위안부 성노예 제도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언들, 역사적 자료들,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밖에는 한국과 중국의 평화의 소녀상이 놓여있다. 이는 두 나라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임을 상징하는 동시에, 두 나라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취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위안부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위안부와 관련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여러차례 제작하며, 위안부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실제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중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과 많이 다를 건 없었다. 다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반항하지도 못한 채 간신히 도망 나오면 가족들의 문전 박대를 당한다. 한 피해자는 일본군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몸이 쇠약해진 상태라 낙태를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이는 남편으로부터, 주변 사람으로부터 오는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을 뜻했고, 그 아이 또한 태어날 때부터 이미 ‘더러운’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이렇게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는 위안부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그 자식들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잊지 않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사실 위안부 할머니의 생존자 수는 매우 적다. 최근 2022년 5월 30일에 중국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세분이 더 확인되었다. 세분 모두 연세가 많았으며 101세인 할머니도 계셨다.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은 살아있는 증인이 있지만 나중에 증인이 없어지면 또 다시 시치미 뗄 수도 있다. 모두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게 되는 그날까지 위안부 문제를 계속해서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학생기자 김리흔(상해중학 11)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