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사는 한국 사람들 특징 ‘자기가 살던 동네에 꼭 한 번씩 가본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이 나오길래 나는 단박에 아니라고 했다. 정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 잠시의 일정으로 한국에 갔다가 그 놈의 코로나가 터지면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나도 안다. 코로나라면 다들 소설 한 권씩은 쓸 만큼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젠 지겨울 만한 소재가 되었지만 나도 코로나에 강력하게 얻어터져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내 사연은 이렇다. 나는 한국에서 남편 없이 출산했고 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강제 이산가족이 되어 살았다. 그 와중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겪었고 남편은 아이의 가장 예쁜 시기를 동영상으로만 봐야 했다. 상하이에서 혼자 봉쇄를 겪고 있는 남편이 고독사하지 않을까 별 희한한 걱정을 다 해봤다.
그런 우리가 4년 만에 재회했다. 게다가 부모가 되어 처음으로 같이 산 땅이 상하이였으니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겠는가. 인생 리셋을 꿈꾸며 날아온 상하이였지만 시작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남편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집 근처에 중국 유치원밖에 없었는데 아직 어린아이를 그곳에 두고 차마 돌아서지 못해서 홈스쿨링을 하며 지냈다. 하루 일과가 육아 하나. 자는 시간 빼고 종일 육아 노동이 이어졌고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식구들이 자고 나면 혼자 드라마를 틀어 놓고 내용이 슬프다는 핑계로 엉엉 울었다. 사실 나는 눈물이 없는 편이고 외로워도 슬퍼도 잘 참는데 그때는 툭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시내 중심에 살았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가기엔 겁이 났다. 몇 번을 다녀도 처음 가본 것처럼 비슷하게 생긴 거리에서 길을 여러 번 잃고 방향치인 나는 더 두려워졌다. 한번은 유아자전거에 아이를 태워 야심 차게 나갔지만 중간에 아이가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한 손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론 자전거를 끌고 집에 왔다. 훌쩍이면서. 좋을 리 없이 그저 그런 날들을 보냈다. 1년씩이나 축축한 일상을 버텼고 집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동네를 떠났다. 정이고 뭣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데. 그럴 일 없다고 장담했으나 추억 여행이랍시고 전에 살던 동네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그 시절이 떠올랐는데 그때의 나를 삼켜버린 우울도 같이 왔다. 꾸역꾸역 흘러 마침내 도착한 옛 동네는 세상 힙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사진= 축축했던 창밖]
나랑 만날 땐 안 이랬잖아? 헤어지고 나서 훈남이 된 전 남친을 마주친 기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만 빼고 다 변한 기분. 내가 살 땐 집 건너, 양옆에서 그렇게 공사를 해 대더니. 가뜩이나 우울한데 창밖으론 줄줄이 엮은 컨테이너만 보였고. 땅을 파 올리고 먼지 흩날리던 회색빛 시간을 나는 다 기억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분위기 갈아 끼우고 반짝반짝하고 있다.
동네를 걷는 동안 과거의 시간이 하나 둘 잊혀졌다. 오랜만에 눈물 좀 흘려볼까 하는 각오로 왔다가 오히려 산뜻해졌다. 내 지난 모든 것도 덮여 사라진 것처럼. 뜻밖의 과거 청산. 하긴 지금의 나는 이 동네에 살던 시절과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변해버린 건 나일까 아니면 시간일까.


[사진= 분위기 갈아 끼운 힙해진 동네]
어쨌든 다시 찾은 옛 동네에서 추억할 게 없었다. 힙해진 공간에 맞게 에라 모르겠다, 내 마음도 들썩이다 돌아왔다. 우울했던 기억도 이젠 안녕. 그래서 말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이미지 갈아 끼우고 상하이에서의 남은 시간은 씩씩하게 살아보려 한다. 그리고 상하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자기가 살던 동네에 꼭 한 번씩 가’ 보길 바란다.
고운배(tj_jeong030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