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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사랑법]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2023-08-02, 16:44:07] 상하이저널
[사진= 상하이 판롱톈디(蟠龙天地)]
[사진= 상하이 판롱톈디(蟠龙天地)]
집 근처에 ‘핫플’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은 판롱톈디(蟠龙天地). 차에서 내려 그곳에 들어선 순간, 복잡했던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손이 멍하게 서 있던 내 머릿속에 쑥 들어와 뇌를 꺼내간 모양이었다. ‘몸을 서리고 있던 용(蟠龙)’이 소음 때문에 기다림을 채우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몸을 뒤틀고 울부짖으며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유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 ‘무명인’ 중)

물길을 건너 저편으로 가볼까 했는데, 무지개 모양의 작은 다리 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마다 사람이 그득 타고 있어, 물길을 외면한 채 좁은 골목을 걸었다. 골목마다 낯선 냄새가 났고, 오가는 사람들과 줄 서 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휴일마다 다른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혼자 있기 싫어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소란한 무리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꼈다. 그의 눈길과 손길이 절실해지자, 버려졌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진= 상하이 판롱톈디(蟠龙天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파에 밀려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더니 판롱톈디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경계에서 바라본 ‘판롱’의 모습은 의외로 고요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몸을 똬리처럼 동그랗게 만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용은 ‘혼자’라는 게 반드시 외로움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버려지거나 소외된 것도 아니고 실패는 더더욱 아니라고.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모든 소란은 결국 뭐라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하루살이의 미소 같은 것.” (박연준 <소란> 중)

밖에서 들려오는 ‘개골개골’ 소리보다 소란하던 내면이 비로소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외로움이나 소외가 아닌 온전한 고독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사람들이 보는 ‘나’가 아닌, 그의 시선으로 본 ‘나’도 아닌, 그 어떤 시선으로도 손상되지 않은 ‘나’를 찾고 싶었다. 지금 내 곁에 부재해 그리워하고 있던 건 ‘그’가 아니라 실은 ‘나’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시선을 갈망한다. 설렘과 매혹을 전하는 은근한 시선은 얼마나 관능적인가. 지지와 격려의 시선은 나를 붙들어준다. 인정과 경탄이 담긴 시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끌어올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매 순간 남의 시선으로만 나를 바라본다면, 나뭇가지에 달린 작은 나뭇잎처럼 피로하고 위태롭다. 바람에 운명을 송두리째 맡겨야 하기에.

[사진= 상하이 판롱톈디(蟠龙天地)]
 
홀로 있는 시간이 비로소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외로움을 느꼈던 건 그가 곁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사람일수록 홀로 있는 시간이 더 절실할지 모른다. 함께 하는 시간은 선택이지만, 고독은 필수니까. ‘나’를 잃어버리는 건 애인이나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상실이다.

연인의 손을 잡듯 다정하게 두 손을 마주 잡고 그곳을 나왔다. 몸을 서린 용이 말아두었던 꼬리를 잠시 흔들어 주었다. 여전히 혼자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글·사진_ 윤소희 작가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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