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책읽는 상하이 231] 그래도, 아직은 봄밤

[2024-02-29, 18:11:22] 상하이저널
황시운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황시운 | 교유서가 | 2021년 5월

첫 눈길은 제목이 이뻐서. 두 번째 눈길은 표지도 이뻐서.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니. 벚꽃으로 하얗고 달큰하게 들뜬 밤처럼 적당히 설레고, 적당히 따뜻한 소설이려니 했다. 황시운,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막 등단한 신인인가 보다 했다. 순전히 제목과 표지에 끌려서 산 책.

이 소설집을 읽는 동안, 제목과 표지를 몇 번이나 한참을 쳐다봤다. 핵폭탄급 반전이라고나 할까. 소설인데 지독히도 소설이 아니었다. 도리질 쳐 외면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실이 이 작고 이쁜 책 안에 들어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매듭’부터 심상치 않았다. 암벽등반을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남자의 추락사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남자 옆에서 생계와 간호를 책임지고 있는 약혼녀.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곳곳에서 배어 나오는 내공이 있었다.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때까지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조차 몰랐다. 작가에 대한 정보없이 쭉 읽어보려고 했으나,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황시운 작가는 10년 전 문학상을 수상하며 멋지게 신인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때, 동료 작가들과 야간산행 중 추락사고를 당하고 하반신 마비가 된 여성 작가였다. 이 소설집은 사고 후 10년 되던 2021년에 나온 책이다. 10년 동안 몇 차례의 큰 수술을 거치고 생사를 넘나들며 매일매일 죽고 싶었지만, 소설만은 쓰고 싶었던 작가의 이야기였다. 

문체는 담담하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해서 작품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 감정선에 푹 빠져 읽게 된다. 고독사, 묻지마 살인, 학교폭력, 청소년성매매 등…. 소재도 다루기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불행과 절망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그 눈길은 덤덤하나, 이해하고 싶고 위로를 주고받고 싶은 따스함이 바닥에 깔려 있다.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조차 없고 매 순간 끔찍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김경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만원클럽, 2년간 장학금 132만元..
  2. [김쌤 교육칼럼] 다시 진로교육을 생..
  3. 中 여성에 수면제 먹인 뒤 성폭행한..
  4. 上海 한국 미술인들 '상해한국미술협회..
  5. 추락하던 마오타이, 가격·주가 일제히..
  6. 쑤저우 셔틀버스 칼부림 막은 中 여성..
  7. 中 세계 최초 주1회 인슐린 사용 승..
  8. OpenAI 중국 지역에 서비스 중단..
  9. 글로벌 1분기 명품 매출 1~3% 감..
  10. [금융칼럼] 중국银联 ‘유니온페이’..

경제

  1. 추락하던 마오타이, 가격·주가 일제히..
  2. 中 세계 최초 주1회 인슐린 사용 승..
  3. OpenAI 중국 지역에 서비스 중단..
  4. 글로벌 1분기 명품 매출 1~3% 감..
  5. 中 일주일새 시골 은행 40곳 줄어…..
  6. 시가총액 9조 하이난항공, 하루 만에..
  7. 자싱 경제개발구 혁신투자그룹, 저장성..
  8. 베이징, 첫 주택 선수금 30→20%..
  9. 동남아로 눈 돌리는 中 반도체 기업…..
  10. 10대 증권사가 바라보는 하반기 A주

사회

  1. 만원클럽, 2년간 장학금 132만元..
  2. 中 여성에 수면제 먹인 뒤 성폭행한..
  3. 上海 한국 미술인들 '상해한국미술협회..
  4. 쑤저우 셔틀버스 칼부림 막은 中 여성..
  5. 中 청소년 배드민턴 국가대표, 경기..
  6. 다종뎬핑, 올해 '필수 맛집'은 어디..
  7. 中 입국하면 즉시 휴대폰 불심검문?..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43] 줄리언 반스..

오피니언

  1. [김쌤 교육칼럼] 다시 진로교육을 생..
  2. [상하이의 사랑법 14]사랑이 식었을..
  3. [금융칼럼] 중국银联 ‘유니온페이’..
  4. [무역협회] 신흥 산업 발전, 중국이..
  5. 2024 화동조선족주말학교 낭송·낭독..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