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상하이의 사랑법 14]사랑이 식었을 때_ 펑징구전(枫泾古镇)

[2024-06-22, 06:51:32] 상하이저널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기대할 게 없다는 마음. 펑징구전(枫泾古镇)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내 마음이 꼭 그랬다. 한때는 짝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애타게 그리워하기도 했는데, 오래된 결혼 생활처럼 권태기가 온 걸까. 언제부터였다고 그 시점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실망의 순간이 하나 둘 쌓이다 어느 순간 선을 넘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싫어하게 되는 것도 수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으나, 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냥’만이 정답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유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점이 상대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한때 도도함이라 여기며 사랑했던 그 모습이 이제는 오만함이나 무례함, 파렴치함으로 보인다. 순수함은 무지함과 뻔뻔스러움이 되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동네를 산책하다 어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쓰레기만 보아도 그게 글감이 될 수 있다. 다른 시각으로 삶을 보고 싶어 집 떠나 낯선 곳을 찾아가면서도, 다른 한편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중국인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거라는 마음. 오랜 시간 뜨겁게 사랑했다 해도, 어느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을 수 있다. 식은 마음으로 상대의 좋은 점이나 아름다움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이유를 줄줄이 읊어대도 좋다. 설사 100%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듣다 보면 조금쯤은 그 설렘을 함께 맛볼 수 있다. 향기롭고 몽글몽글한 기운이 주변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랑이 식었을 때는 입을 다무는 편이 좋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그저 변명일 뿐, 사랑이 식게 된 진짜 이유도 아닐뿐더러 해롭기까지 하다. 철없던 시절 그런 실수를 한 적 있다. 헤어지자는 나에게 그는 떠나는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다. 끝까지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집요하게 물어오는 그에게 그만 뾰족한 턱 때문이라고 말해 버렸다. 


“사랑이 끝나면
말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
내가 한 사랑이 겨우 그랬나 싶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난 것이 몇 번이었나”
(이병률 ‘과녁’ 일부)

외모를 보고 그를 사랑했던 게 아니었으니, 그건 헤어짐의 진짜 이유 일리 없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다, 영악하게 그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던 지점을 건드렸던 것뿐이다. 그는 결국 양악 수술을 받았고, 나는 한동안 그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다행히 가끔 화면에 나오는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내 헛소리 덕을 본 것 같아 미안함이 많이 줄었다.

헤어지는 것도 사랑의 일부다. 식어버린 사랑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면,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낫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너절하게 떠들어대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으니. 사랑이 식는 건 내 잘못이 아닐지 모르지만, 식은 사랑을 잘 마무리하는 건 내 몫이니까.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2.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3.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4. 마음만은 ‘국빈’, 江浙沪 국빈관 숙..
  5.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6.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7.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8.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9. 가을은 노란색 ‘은행나무’의 계절
  10.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경제

  1.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2.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3.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4.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5.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6.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7.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8. 금값 3년만에 최대폭 하락… 中 금..
  9. 중국 전기차 폭발적 성장세, 연 생산..
  10.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사회

  1.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2.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3.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4.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5. 유심칩 교체 문자, 진짜일까 피싱일까..

문화

  1.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상하이 가..
  2.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3.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4.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5. [책읽는 상하이 258] 신상품“터지..
  6. 상하이 북코리아 ‘한강’ 작품 8권..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3.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4.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5.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6.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