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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방] 카프카의 ‘변신’

[2014-12-19, 07:18:37] 상하이저널
[책 한 권, 공감 한 줄]
백년 전 효자를 죽인 불효자
카프카의 ‘변신’
 
 

프란츠 카프카 | 이재황(옮긴이) | 문학동네 | 2005-07-30

원제 Die Verwandlung(1916년)

 
지방에 살다가 사업을 위해 상경했을 때의 일이다. 당장에 얻을 집이 없어 급하게 고시원으로 입주를 했다. 주말이면 전주를 갔고, 씻고 잠만 자는 공간이라 지낼만했다.

겨울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다. 오마이가뜨! 퇴근 후 불을 켜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몸을 뒤집고 배를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거대했다. 그 놈은 살아있었다. 간간히 보였던 새끼손톱만 한 놈들은 보이는 즉시 가장 가까이 있는 책으로 압사를 시키고 물티슈로 닦았지만, 이놈은 달랐다. 얼마나 거대해 보이던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 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독특한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은 얼마 전 독서토론에서 읽은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라서다. 정확하게 바퀴벌레라는 말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책에 세세하게 묘사된 놈은 이놈이 분명했다.

이놈은 등판을 바닥에 깔고 발길질을 해대다 점점 약해지더니 멈췄다. 보고 있으니 다시 힘없이 바르작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막무가내 불청객과 눈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십중팔구 나는 패배였는데, 다행히 이놈의 눈은 방바닥 쪽을 향해 있었다. 분명히 다른 곳에서 중상을 입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일 게다. 이성을 되찾고 이 놈의 동료나 가족이 있는지 방안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없었다. 수장시키기로 결심했다. 일단 물티슈로 그 놈의 몸을 감싸고, 한 발짝만 움직여도 닿는 양변기에 던진 후 레버를 꾸욱 누를 생각까지 정리했다. 계획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일단 물티슈로 덮었다. 아니 덮으려고 했다. 으아아아! 이 놈은 순식간에 뒤집히더니 총알같이 몸을 움직였다.

욕실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정면으로 마주하자 더 무서워졌다. 저 놈이 나를 향해 돌진해오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선수를 쳐야 했다. 슬리퍼를 들었다. 한 손에 하나씩.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어 잘못 공격하면 슬리퍼에 닿지 않고, 내 다리 사이나 옆으로 피한 뒤에 영영 숨어버릴 수도 있다. 기회는 딱 한번 뿐이었다. 슬리퍼로 살짝 건드렸다. 역시 이놈 제트기였다. 순식간에 나를 향해 튕겨져 나왔다.

따악! 세게 내리쳤다. 아마 옆방과 아랫방 아니, 옆 고시텔과 아래 고시텔 사람들 모두 잠을 깨웠을 정도의 소리가 났다. 욕실화를 들었다. 오마이가뜨! 분명히 바닥에 딱 붙어서 종잇장처럼 돼있어야 할 놈이 보이질 않았다. 다행히 오른손에 들려있던 슬리퍼 바닥에 붙어있었다. 구멍 사이로 거대한 몸이 조각나 있었다. 1대1 전쟁, 완전한 승리였다. 가장 빠르게 죽었으니 죽을 복 타고 난 놈이다.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깨끗이 죽었다.

샤워, 무지하게 오래했다. 물티슈를 10장 넘게 써가며 대청소까지 했다. 편의점가서 바퀴벌레약도 사왔다. 약을 뿌리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방금 죽은 놈의 가족이든 친구가 복수해올 것을 생각하면 괜찮다. 그 놈들을 모두 없애거나 침입하지 못하게만 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냄새였다.

이불을 덮고 누웠다. 혼자 목욕까지 깨끗하게 하고 누워 천장을 보니 이곳이 관 같았다. 이 곳이 관이라면 꽤 널찍했다. 이게 관이라면 부자로 살다 죽으려나 보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가 생각난 건 슬픈 노릇이다. 20대 초반부터 세일즈를 해온 나는 100년 전 그레고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레고르는 효자고 나는 불효자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레고르도 버림을 받았는데, 가족들을 희생시켰던 내가 변신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내가 방금 했던 것처럼 당하지는 않을까. 가족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아직까지 나를 한번도 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방금 그레고르를 내가 죽였다. 백 년 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세일즈맨을, 가족을 희생시킨 지금의 세일즈맨이 죽였다. 백 년 전 그레고르 아버지가 사과를 던져 아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고 결국 죽었다. 지금 내 가족은 내가 무엇으로 변했을 때 나를 학대하고 죽음을 바랄 것인가. 이미 독충처럼 괴롭힘을 주었던 나를 한없이 감싸주기만 한 가족들인데 말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카프카의 변신은 백년 후의 중년 세일즈맨에게 죄책감을 주었고 가족에게 감사할 줄 아는 큰 깨달음까지 주었다.
 
▷ 상하이작가의방
유준원(noran7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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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는 ‘작가의 방’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나이부터 50대의 나이까지, 다양한 감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한국인들이 모였다. 매주 일요일 오전 두어 시간의 모임에서 똑같은 제목으로 두 꼭지의 글을 써서 공유하고 있다. 상하이저널이 진행하는 ‘책쓰는 상하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인 작가들의 글쓰기, 책쓰기, 시작법 등 공개 강의 과정에 함께 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의 방’ 플랫폼은 상하이에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예비 작가들을 격려했고 신인 작가를 발굴해내고 있다. ‘작가의 방’이 상하이 교민사회에서 인문적 삶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며 문화 수준을 올리는데 기여해 나가리라 믿는다.
shanghaipark@naver.com    [작가의방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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