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싸움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따져야 직성이 풀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등떠밀려서 총대를 메다보니 적지 않게 사람들과 충돌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 옆에는 항상 말리는 그 누군가가 있었다. 내 눈에는 비겁한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대학 때는 교수님이, 결혼 후에는 남편이, 요즈음에는 내 나이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전철표를 사고 10원 짜리 냈더니 잔돈을 확 밀어던져 동전이 내 발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때, 아무 소리 안 하고 쭈그리고 주워야 하나? 손님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고 큰 소리로 꾸짖으며 싸워야 하나? 게다가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도 표정도 없이 먹던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있을 때, 내 수명은 5년은 단축됐을 거다.
상해에 막 와서 영수증의 중요성을 모를 때, 며칠 전 산 믹서기가 돌다서다가 반복되어 바꾸러 갔더니 엊그제 그 유명 메이커 제품을 권했던 나를 뻔히 아는 그 직원이 `여기서 산 것인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영수증 가져오라' 하니 없어진 영수증 대신 `나 모르냐?'고 얼굴 들이대며 싸워야 하나? 믹서기 갖다 버려야 하나? 내 수명은 또 5년 단축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확실한 노선을 정했다. 따지자! 싸우자! 요구하자!
아들이 "엄마, 중국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거 안 해 줘* 하는 거 있으면 "왜 안 해 주냐?*고 싸워서 하게하고, 남편이 "그냥 둡시다* 하는 거 있으면 내가 싸워서 우리 원하는 대로 만들어 논다. 택시 기사가 내 말 안 듣고 다른 길로 돌아와서 택시비 많이 나오면, "내 시간도 물어내라*고 큰소리로 혼내고 택시비는 주고 싶은 만큼만 주고 내린다.
남편은 그런 내가 너무 불안하다며 "중국 사람하고 제발 싸우지 마라*고 당부요, 아들은 한국에 전화할 때마다 "할머니, 중국 사람들이 엄마한테 걸리면 다 꽥이야*한다. 상해 생활 초창기에 나는 신경 곤두세운 쌈닭이 되어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는 큰소리 내는 것이 싫어졌다. 중국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인지, 이해하게 된 것인지, 아님 포기하게 된 것 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이웃에서 큰 소리가 났다. 가스비 받으러 온 여자가 `집에 사람이 없어서 두 번이나 오게 했다'고 다짜고짜 화를 냈기 때문에, 갑자기 당한 이웃은 `너 하는 일이 뭐냐? 몇 달을 밀린 것도 아니고 한 달 안냈을 뿐인데, 네가 어느 날 온다고 통지한 것도 아니고 집에 사람이 없었음을 짜증낼 일이냐?' 한동안 큰 소리가 오고 갔다.
또, 내 친구의 경우 일방통행 길에서 마주 오는 오토바이에 일행이 부딪쳤는데 사과는 커녕 우리 보고 잘못했다고 하는 바람에 싸움이 커지고 구경꾼들 둘러싸고 급기야 경찰까지 오게 되었는데 다들 자기네 편만 들고 우리 쪽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경찰서까지 가서 화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는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고 하소연한다.
세월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분한 것 참는 것이 싸우고 기분 나쁜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싸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어도 그 뒤 끝은 개운 칠 못하다. 옛날로 치면 나도 비겁한 사람의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인간세계나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칙은 `적자생존'과 `생존 경쟁'이다. 하지만 식물들은 경쟁이나 투쟁보다는 상호공존 내지 상생을 통해 번식과 번영을 추구한다. 날 더워 불쾌지수 높은 요즈음 한번 더 참고, 식물들의 삶의 방식을 배워보면 어떨까?
▷포동아줌마(delpina@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