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안경을 썼다. 상해에 온 지 1년 남짓 지나서부터 TV를 볼 때 찡그리는 현상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안과에 갔더니 이미 교정을 해야 하는 단계가 되어 버렸다. 큰 조카들이 안경을 쓰기 시작할 때 형님들이 `가슴이 내려앉는 듯하다'든지 `싸아하다'든지 하는 표현을 했을 때 실감나지 않던 그 기분, 그것이 이것이었나 싶었다.
더구나 일찍 눈이 나빠서 오랫동안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내 아들도 그런 과정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눈이 일찍 안 좋아졌을까? 늦었지만 그 원인을 찾기에 바빴다.
첫째는 집 조명인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은 왜 거실이건 방이건 흐리멍텅하고 붉으틱틱한 조명을 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그들의 삶은 매일 포도주 마시며 분위기를 잡아야 할 만큼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이사만 하면 제일 먼저 환한 형광등으로 조명부터 바꾼다.
공부방은 물론이요, 거실과 안방까지 답답한 것들을 쓸어버리듯이 싹 바꾼다. 그래도 두꺼운 재질로 된 등갓은 그다지 환하질 않다.
둘째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하거나 과다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상해에 와서 원하는 학교에 자리가 없어 대기 중 일 때, 시험 볼 기회가 오면 잘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영어에 대한 부담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또 처음에 두어 달 다녔던 학교라고 편했겠는가? 외국애들 낯설고, 영어 안 들리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마음 안 비뚤어지고 눈만 나빠진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셋째는 늘 가까이 있는 컴퓨터나 게임기 때문인 것 같다. IT산업의 강국이라고 하는 우리 나라의 아이들처럼 안경을 많이 쓴 나라도 드물다. 중학생 정도 되는 우리 한국 아이들 몇 명을 모아놓고 보면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단체 사진을 찍어오면 정작 조명 흐린 데서 사는 중국애들보다 선진 문명 발달한 미국애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안경을 많이 썼고 지금은 그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전에 필리핀에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낸 문제가 있다. "이곳에서 찾기 힘든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일까?'' 정답은 "안경 쓴 사람''이다. TV, 컴퓨터, 게임기 등이 일반가정에 구비되어 있지도 않은데다가 곳곳에 바다의 먼 수평선이 펼쳐져 있으니 눈이 바빠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이웃에 대여섯 살 된 아이가 컴퓨터에 앉아 영어CD로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한다니 모두들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너무 아깝다. 지금 그런 거 안 해도 되니 나무의 초록색도 보고 분수의 물방울도 튕기면서 나가서 놀라고 하고 싶다.
요즘은 내 눈도 잘 안 보인다. 라식 수술을 해서 1.0의 시력을 유지했었는데 어쩐지 멀리 있는 간판도 흐리고 사람도 잘 못 알아본다. 나이가 들면 노안이 온다는데 학창시절에 겪었던 근시가 시작될 때의 현상과 비슷하니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현상은 비슷하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세상에 뭐 그리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어떤 것은 적당히 보고 넘어가는 것이 편할 때도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때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생각한다면 아들과 나의 좋았던 시력을 이곳에 묻고 간다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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