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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야기]즐거운 편지

[2007-12-18, 00:08:00] 상하이저널
12월이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는 않다고 하지만 집안이 썰렁하여 어깨가 움츠려진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벽에 달린 달력이 존재의 가벼움으로 가끔 턱턱 바람 부딪는 소리를 낼 때, 저금통장 잔고 바닥나는 것처럼 어쩐지 불안하다.

얼마 전, 내가 몸담고 있는 종교 단체에서 중국의 에이즈 환자와 시골의 어려운 학교를 돕는다는 취지로 연하장을 판매했다. 잘 아는 분이 "도와야지~"하며 뭉치로 떠넘겨서 얼떨결에 받아는 왔는데 그것이 신발장 위에서, 거실 협탁에서, 내 책상에서, 자리를 못 찾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아예 기부금을 내면 모를까 필요 없는 물건을 떠맡아오는 것이 더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가한 날, 그제서야 그 카드 뭉치를 풀어보면서 섬세한 겉면 표지의 아름다움을 손끝으로 만져보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리고 만들고 결핵환자를 돕는다는 크리스마스 씰까지 봉투에 정성껏 붙여서 주위 친구나 어른들께 보냈고, 교직에 있을 때는 학생들이 가져다 놓은 카드로 교무실 책상이 소복하던 생각, 결혼 후 몇 년은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께 연말이면 몇 자 적어 보냈던…, 그리고는 카드에 대한 기억이 끊긴다. 지금은 어디다 쓰는 물건이냐고 스스로 묻고 있질 않은가?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생각지 않게 날아 온 소식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것이 편지든 카드든 전화든 메일이든 형식만 다를 뿐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잊혀지지 않은 사람인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이런 노래를 한 것 같다.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中>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행복 中>

가장 최근에 나에게는 두 개의 즐거운 편지가 있었다. 하나는 4년 넘게 상해에서 언니 동생하며 지냈던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도대체 소식도 없고 연락처도 모르고 해서 답답하던 차에 몇 달 만에 날아온 편지이다. 아이들이 국제학교만 다녀 한국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큰 걱정을 안고 갔지만 너무 잘 적응하고 있고 이번 중간고사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유명한 서울 강남의 D동에서. 가을에 있었던 독후감 대회에서 큰 상까지 받았으니 상해에서도 꾸준히 한국어 공부 놓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이곳에 사시는 분들께 전해달란다.

또 자신은 여기서 배운 중국어로 중국학원에 취직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학교와 학원을 오가던 그녀의 지난 모습이 떠올라 나를 행복하게 한다. 또 하나의 즐거운 편지는 삼십이 훌쩍 넘어 결혼한 여동생이 아기가 없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더니 3년 만에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상해에서 일 년을 살면서 무엇을 얻었을까? 눈에 보이고 손에 쥔 것이 없어도 잃은 것이 없으면 그건 다 얻은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 힘은 들었겠지만 남편들 하는 일에 크게 나쁜 일 없었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크고 학교 잘 다니면 그것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 얼떨결에 연하장이 많이 생겼으니 한국에 계신 분들께 오랜만에 상해의 즐거운 편지를 날려야겠다.

▷포동아줌마(depin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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