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로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큰 딸아이의 권유로 남편, 작은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극장을 갈 기회를 갖게 되었다.
큰 애가 우리에게 적극 추천한 영화는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아테네 올림픽 본선 경기에 참가하게 되는, 세 명의 아줌마 핸드볼 선수에 관한 스토리였다.
태릉선수촌에서의 나이 어린 후배 선수들간의 갈등, 감독과 선수들간의 대립을, 인생사 경험 많고 용감무쌍하기까지 한, 이 세 아줌마들이 헤쳐 나가는 때로는 무대포 같이 밀어 부쳐대는 불도저 같은 아줌마들의 Power가 때로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는 따뜻하고, 코 끝이 찡~하게 하는 이 아줌마들의 우정 어린 숨결이, 우리의 가슴에 잔잔히 젖어 들었다.
비록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에 그치긴 했지만, 경기에 쏟아 붓는 그네들의 열정과, 죽을 힘으로 땀범벅이 된 몸으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가 그네들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결국,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그네들의 인생은 바로 금메달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갈등 앞에 놓여지게 되고, 승리나 패배감 속에서, 때론 기쁨과 행복에 탄성을 질러 보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울기도 한다. 작년 한 해, 고3 이라는 힘들고도 어려운 세월을 견뎌낸 수험생들 중, 어떤 이들은 지금 가족과 함께 생애 최고의 기쁨을 맛보고 있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쓰라린 좌절감의 늪에서 아파하고 있을 게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아이도, 내 조카도 지금 이 순간, 아파하면서,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라. 그것만이 너에게 네 생애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라는 말로 나의 작은 위안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새삼 뒤돌아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엔 참 즐거움이 많았던 것 같다. 좀 더 젊었을 땐, 좌절보다는 기쁨과 희망이 훨씬 더 컸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해 한해 세상에 대해 책임져야 할 무게감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부터, 아픔이, 걱정이, 슬픔이 양 어깨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면서, 자식을 하나 둘 낳으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걱정과 아픔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 번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더 많은 터...
처음으로 목을 가누기 시작했을 때
유치원 발표회에 갔을 때 부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혼자서도 척척 숙제 해내는 대견스런 모습들...
어쨌든 우.생.순. 이 영화를 보고서 내 생활을 한 번 뒤돌아 보게 되었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늘 결과만을 중시하는 나쁜 습성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고 있는 많은 기쁨과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의 맘도 새삼 든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 행복한 미소 지으며, 가방 들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는 이 순간이야말로 우.생.순 인건 아닐런지?
'우.생.순'이, 살면서 꼭 한 번만 일 수는 없다. 늘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자 한다면 매 순간 순간이 `우.생.순!'
`우.생.순'은 남들이 보는 눈 속에, 남들의 말속에 있는게 아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울지 말 것을 약속하자"던 감독의 말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