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교 길에 친구의 손에 들려진 도시락 통을 보며, "엄마, 저도 도시락 좀 싸주시면 안돼요?''하는 아이의 말…. 순간 맘 한쪽 구석이 찡~해지면서, '어떻게 할까? 내일부터라도 싸준다고 할까? 아냐 섣불리 답할 일이 아니지. 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을 수만은 없는 거야. 때론 먹기 싫은 음식도 먹을 필요가 있다는 걸 배우는 게 우선이야. 그러기엔 학교가 가장 제격이지….'
아이의 바램을 `교육'이라는 핑계로 단호히 거절은 했지만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입맛에 맞지 않아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을 애꿎은 음식만 숟가락으로 푹~푹~ 눌러대며 꾸역꾸역 넘길 모습을 잠깐 머리 속에 그려보니, 맘이 또 한없이 무거워진다. 도시락을 싸주고 있진 않지만 `학교 음식이 행여 입에 전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이지 `한 숟가락조차도 먹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맘에 매일 김 2봉지와 우유 1팩은 잊지 않고 꼭 챙겨주고 있다.
사실 이것도 알고 보면 나의 이기심의 발뺌이 아닌가 싶다. 난 집에서 혹은 친구들과 맛있는 점심 식사를 즐기는데 대한 일말의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에 대한 보상심리….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어쩌다. 친구들과 또는 아는 지인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을 기회를 갖게 될 때면 아이에겐 도시락도 안 챙겨주고서 나만 혼자 맛있는 걸 너무 거하게 먹는 것 같아 괜시리 아이에게 적잖이 미안한 맘이 든다. 이런 날이면, 슈퍼에 들러 저녁 찬거리 사는데 왜 그렇게 유달리 신경을 쓰게 되는 건지.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정성을 다해 준비한 저녁식사로 가족에게 살며시 내 양심의 미안함을 표현하게 되는건지….
아이가 학교에서 늘 맛없는 점심을 먹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나와 집에 와서 사뭇 행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내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교측에서도 여러 나라 학생들 입맛에 맞추느라, 영양과 질을 개선하느라, 무던히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에 각각이 길들여진 우리 여러 아이들의 입맛에 꼭꼭 들어 맞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학교란 곳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맛있는 걸 먹을 때도 있고, 별 맛이 없는 것도 먹어야 하는….
아침마다 부지런히, 아이가 좀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맘으로 정성껏 도시락을 챙겨주시는 많은 우리 엄마들에게, 그 정성에, 그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도시락을 준비해 주지 않는 우리 엄마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단지, 아이를 사랑하는 표현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물리적인 도시락은 챙겨주고 있지 않지만 마음의 도시락은 항상 우리 아이의 등교 길에 같이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