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발 금융충격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명목 경제 성장률은 올 3분기에 사실상 ‘0(제로)’에 근접했으며, 내년 4분기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를 예측해 유명세를 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내놓은 세계 경제 전망이다.
금융위기 여진이 실물경제로 옮아가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선진국 경제가 이미 침체(Recession)에 들어갔다고 진단하면서 내년 하반기에나 회복 가능할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 유로지역, 일본 등 선진국 경제 또한 침체를 이어가는 동시에 그 동안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등 신흥경제권의 경기 하락도 본격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 세계 경제성장률 1~2%에 그칠 듯
2004년 미국 모기지 부실이 터지기 전까지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고성장 저물가’, 소위 골디락스를 구가해왔다. 이 기간 연평균 세계 경제성장률은 3.7%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 들어 높은 유가와 세계 신용경색으로 세계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급전직하 상황이다. 2009년에도 금융시장 불안과 이에 따른 실물경제 침체, 또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해왔던 중국 등 신흥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불가피하다. 금융시장 불안이 투자 위축, 실업 확대, 소비 둔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엔 세계 각국이 동시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과 복합적 충격에 의해 유발됐다는 점에서 침체 국면 장기화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IMF는 이 같은 사정을 반영해 2009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2%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세계은행 역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1%로 전망하면서 금융 부문 혼란과 수출 성장률 저하 등을 위축의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 미국,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침체를 겪고 있다. 전미경제조사국(NBER)의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13개월째 침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침체는 단순한 국내총생산(GDP) 감소가 아닌 경기위축, 고용축소 등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는 최악의 수준이다. 실업률은 6.7%로 3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으며 내수를 지탱하는 제조업 경기는 26년 만에 최저 수준을 맴돌고 있다. 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의 위축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평균 -1.2%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구(IMF) 역시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지의 조사 결과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미국의 경제침체가 최소한 내년 1·4분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와 관련, “내년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공포가 깊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7일 “단기 예산 적자 확대를 우려하지 않고 경기회복 대책을 펴나갈 것”이라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오바마는 지난 주말에도 195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투자를 통해 2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 EU 93년 이후 최악
내년 유럽연합(EU) 경제는 93년(-0.8% 성장) 이후 최악의 침체가 예상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전이되면서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고용, 투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로지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0.3%)이 예상된다”면서 “자산가격 하락과 고용악화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로 민간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국가별로는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주택거품이 꺼지면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전망이다. 영국은 금융 산업 위축으로 EU 국가 중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잘해야 제로 성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 일본 제로성장 재현
올해 일본 경제는 소비와 투자 부진,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2분기에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내년에도 경기 둔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계 경제 하락세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여 일본 경제도 내년 말까지는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내기 어려울 전망”이라면서 “전체적으로는 0.5%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 덧붙였다. 미국, 유럽과 달리 금융시장 위축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지만 만성적인 소비 위축에 수출이 둔화됨으로써 성장세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 경제에 대해 개인 소비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제 아래 0.5% 정도의 전망치를 내놓았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측하는 기관도 많다. IMF는 일본 경제성장률을 -0.2%로 예측했고, OECD 전망치는 -0.1%다. 다만 과거 10년 장기불황 시대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현재는 과잉설비, 부채 부담이 크지 않고 기업의 수익성도 구조적으로 개선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