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동차의 조립에 머물던 상하이자동차(SAIC)가 자체 브랜드의 고급 세단 생산을 준비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해외 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상하이자동차의 첫 모델이 현대·기아차가 주력하는 중형차급이어서 중국 업체의 추격이 벌써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상하이자동차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폭스바겐 등 해외 합작사로부터 얻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MG 로버 그룹의 중형 세단 '로버 75'를 개조,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상하이자동차는 지난해 로버 그룹으로부터 지적재산권을 사들였다.
상하이자동차는 "자체 브랜드 생산은 '건전한' 경쟁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해외 합작사의 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6개월 안에 제조에 들어가 빠르면 2007년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하이자동차가 해외 합작사로부터 얻은 풍부한 경험과 자원을 바탕으로 과거 '협력자'에서 '경쟁자'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컨설팅업체인 오토모티브 리소시스 아시아의 마이클 듄 대표는 "중국 업체들이 해외 합작사를 설립한 것은 자체 생산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며 "바로 지금이 자체 생산이 가능해진, 중국 자동차 시장 발전의 분기점"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상하이자동차가 출시하려는 '로버 75'는 현대차가 주력해 온 중형차급이라 한국 업체에 위협이 될 전망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정부 지원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과 동일 시장에서 경쟁할 경우 그동안 한국 업체들이 누려온 저가 경쟁력의 강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중국업체와 현대·기아차의 기술 수준은 대략 5~7년 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거대한 잠재력과 추격을 위한 투지 등을 감안할 때 결코 방심할 수 없다"며 "특히 현대·기아차의 비교우위 영역인 준중형·중형차급이 대상이어서 향후 전면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상하이자동차와 손잡았던 GM과 폭스바겐은 상하이자동차의 자체 브랜드 생산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나 앞으로 합작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에 난감한 기색이다.
폭스바겐은 "양사의 파트너십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상하이자동차에 대한 지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업체가 중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중국 업체와 합작해야 한다는 중국 당국의 조항에 따라 이들 업체에는 대안이 없다. 점차 중국에서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있어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북미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GM의 경우 중국에서 3억2700만 달러의 세전이익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자동차 생산이 2000년에 207만대에서 불과 5년 만에 580만대로 성장하는 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 5년 후면 한국 업체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업체에게도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중국 업체는 국내 자동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승용차 중 26%가 중국산 브랜드로 2001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편 상하이자동차는 그동안 자체 브랜드 생산을 위해 2004년 인수한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GM 등 해외 유명 업체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대거 영입해 왔다.